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한창훈)는 20일 회사자금으로 해외 유명화가의 미술품을 구입해 자택에 걸어둔 혐의(횡령)로 구속기소된 오리온그룹 담철곤(53)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대기업 사주가 회사 돈으로 고가 그림을 구입해 감상했다는 이유로 횡령죄로 처벌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담 회장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계열사 4곳의 자금으로 55억원 상당의 프란츠 클라인의 작품 '페인팅 11' 등 총 140억원 상당의 미술품 10점을 사들여 침실과 거실, 식당 등 자택 곳곳에 걸어둔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담 회장은 그룹 계열사에 포장재를 공급하는 위장 회사를 차명으로 보유한 후 배당금과 급여를 챙기고, 법인 영업소를 별채로 전용하는가 하면 람보르기니와 포르쉐 등 법인이 대여한 외국산 고가 차량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는 미술품이 법인의 소유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의 감상이 구입의주목적이었고, 구입 즉시 자택에 장기간 설치한 점, 회사에 미술품을 설치하거나 보관할 장소가 없었다고 볼 수 없는 점, 구입과 관리 과정에 법인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담 회장의 미술품 구입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담 회장의 미술품 구입 행위에 대해 관행적인 재벌가(家)의 도덕적 해이라고 판단, 이례적으로 횡령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는 법인 자금으로 구입한 그림을 잠시 동안 감상한 것에 불과하다고 피고인이 주장할 경우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배임으로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횡령 혐의를 적용할 경우 그림 구입 액수 전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반면 배임은 임대료 등 일부 액수에 대해서만 법적 책임을 따질 수 있다.
재판부는 또 횡령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그룹 전략담당 사장 조모(53)씨에게 징역 2년6월, 판매를 위탁 받은 그림을 담보 삼아 수십억원을 대출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미갤러리 홍송원(58) 대표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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