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를 꿈꾸다 1960년대부터 작곡가로 활동한 남편은 무려 3,000곡의 가요를 만들었다. 드라마 작가이기도 한 아내는 300곡의 가사를 썼다. '향수' '킬리만자로의 표범' ' 그 겨울의 찻집' 'Q' '타타타' '립스틱 짙게 바르고'.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명작 100여 곡이 김희갑(75) 양인자(66) 부부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들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사랑 받아 왔지만 요즘 들어 부쩍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불후의 명곡 2'(KBS2) '나는 가수다'(MBC) 같은 인기 폭발 예능 프로그램 덕분이다. '불후의 명곡 2'에서는 이달 초 작곡가 특집으로 '김희갑 작곡가&양인자 작사가' 편을 방영하기도 했다.
"TV 프로그램들이 심지에 불을 댕긴 것일 뿐 모든 사람이 실은 잠재적으로 음악을 들으려는 강렬한 욕구를 갖고 있는 거지." 19일 만난 김희갑 양인자 부부는 옛 노래들이 새롭게 환호를 받고 있는 이유를 "요즘 대중음악은 리듬만 있고 멜로디는 없는데 멜로디 있는 옛 음악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새로운 리듬을 붙인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대중음악을 찾아 듣는 시대가 온 게 반갑고 고맙다"며 양씨가 희색을 띠자, 김씨도 "확실히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아졌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움직일 일은 자꾸 생기는데 세월을 속일 수는 없다. 몸이 고달파 욕심 대로 일을 다 해 내기 힘들다. 양씨는 체력상 "하루에 한 가지 일정밖에 소화 못 한다"며 "젊었을 때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하고 푸념했다.
대중가요만이 아니다. 두 사람이 뮤지컬에 도전한 첫 작품이었던 '명성황후'도 29일부터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재공연된다.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드물게 1995년 초연 이후 거의 매년 이어 오는 공연이다. 양씨는 '명성황후'의 장수 비결을 "우리가 늘 그 안에 있어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한국적 선율에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기운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음악은 300편 정도 했지만 '명성황후' 제안을 받기 전까지 뮤지컬은 해 본 적이 없어 고민도 좀 했다고. 그래서 곡을 쓰기 전까지 둘이서 런던으로 뉴욕으로 다니면서 뮤지컬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김희갑)
"안 해 본 일이니 욕심이 나서 내가 무조건 하자고 했지. 그러다 3, 4년을 뮤지컬 공부하러 외국 다니는 데 써야 했지만. 그것도 우리 돈 들여 가면서."(양인자)
젊은 시절에는 곡을 만드는 것이 큰 벌이가 안 됐지만 "신명 때문에 일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의 진가를 인정 받아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창작에 게으름을 피울 만도 한데 여전히 넘치는 "신명 때문에" 두 사람 다 바쁘다. 가수 김국환, 혜은이의 신곡을 만들고 있고 "느닷없이 딸과 같이 노래하고 싶다는 뽀식이(개그맨 이용식)를 위해서"도 노래를 쓰고 있다.
'명성황후'에 대한 욕심도 없지 않다. "신곡도 신곡이지만 '명성황후' 음악도 손을 좀 봤으면 싶어요. 음악은 한 번 만들었다고 그냥 둘 게 아니고, 시대 감각에 맞춰 고쳐서 대중과 가깝게 만드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거든. 죽기 전에 수정 작업을 꼭 해야 할 텐데." 원로 작곡가, 작사가 부부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나이를 먹지 않고 있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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