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혹은 소설일까, 아니면 에세이일까. 어쩌면 비평일지도. <사랑의 미래> (문학과지성사 발행)는 시와 소설과 에세이와 비평의 경계가 모호한 이른바 탈장르 문학이 국내 문단의 중심에서 본격적으로 싹 트는 조짐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저자는 문학평론가 이광호(48ㆍ사진)씨. 올 초까지 계간지 문학과사회 편집을 10년간 맡는 등 현장 비평으로 문단의 중심에 있는 그가 시나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독특한 형식의 글을 내놨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웹진문지에 연재했던 41편의 글을 묶은 책이다.
테마는 사랑. 문학의 소재로는 지극히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를 풀어가는 그의 글은 주제는 물론 문학 장르가 가진 매너리즘마저 뛰어넘어 다채롭게 빛난다. 연인들이 겪는 서성임과 기대, 그리고 엇갈림이란 미묘한 감정 변화를 따라가며 단상을 적는다는 점에선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그와 그녀라는 3인칭의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선 픽션이다. 그 단상들이 이야기 속 인물의 발화인지 저자 자신의 것인지도 모호하다. 동시에 매 편의 글이 시 한 구절로 시작해 그 구절의 이미지를 확장한다는 점에선 시적이면서 시 비평에도 가깝다.
책에 등장하는 서사는 사랑이 늘 그렇듯 단순하다. 그와 그녀는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우연히 함께 빠져 나온 뒤 건널목 앞에 섰다가 그가 불현듯 그녀의 손목을 잡고 건널목을 뛰면서 사랑이란 사건이 발생하는 것. 1부는 그의 관점에서, 2부는 그녀의 관점에서 풀어가는데 조곤조곤 음미해야 할 구절들로 풍성하다.
둘이 건널목을 뛰는 순간에 대해서도 "사랑의 속도에서 언제나 두 사람이 나란히 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중략) 어느 순간 그는 너무 빨리 걸어갔고, 그녀가 그 속도에 익숙해질 무렵, 그는 이제 더 이상 빨리 걷지 않았다"(21쪽)고 적는다. 그들은 동시에 사랑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책은 그렇기에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쓸쓸한 사유이면서 사랑이 끊임없이 도래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해명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를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소한 사유의 궤적"이라고 했다.
이씨는 책에 대해 "픽션이 가미됐다는 점에서 '픽션 에세이'라 부를 수 있고, 1인칭 주체의 고백인 에세이와 달리 글쓰기 주체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익명의 에세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 소설, 에세이 등의 장르 구분은 서양 근대에서 확립된 제도"라며 "최근 외국에서는 비평가나 작가들이 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많이 쓰는 추세인데, 국내에서도 이런 글쓰기를 의미 있게 시도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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