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건축 계획을 백지화고 최측근인 김인종 경호처장이 사저 파문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권 내 복잡한 역학 관계를 읽을 수 있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역학 관계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 실세들 간의 힘 겨루기 조짐도 보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선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관계에서 당의 목소리가 급격히 커졌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으로 청와대를 비운 사이에 사저 백지화를 강하게 요구했고, 청와대는 결국 이를 수용했다.
여권 관계자는 "정권 초반이었다면 당 지도부가 불경죄로 찍힐 것을 우려해 눈치를 봤을 것"이라며 "그 만큼 임기 말 청와대의 힘이 빠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같은 파문으로 인해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당겨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김 처장의 사의 표명은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임태희 대통령실장 간의 조율에 따른 합작품이라는 해석이 많다. 특별히 끈끈한 관계는 아니었던 두 사람의 정치적 판단과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전략적 제휴를 맺고 김 처장을 압박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임 실장은 김 처장 인책 선에서 사태를 수습해 자신과 김백준 총무기획관 등에게까지 책임론이 번지는 것을 막으려 한 것 같다"며 "홍 대표로선 사저 파문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경우 10ㆍ26 재보선에 악영향을 미쳐 자신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사태를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권 핵심 인사는 "대통령실과 경호처의 관계가 평소부터 미묘했다"면서 "사실상 '사저 청문회'였던 10일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실 국정감사 때 경호처가 사전에 정보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감장 현장에서 부동산 서류 등을 팩스로 뒤늦게 받아 봤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동안 침묵 모드였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17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청와대 전면 개편론을 제기한 것은 '견제ㆍ대립 관계'인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 장관은 "대통령실장이 비서실 관리를 잘못하고 대통령 보필을 잘못한 책임이 있다"면서 임 실장을 정면 비판했다. 이 전 장관 등 정권 창업공신 그룹과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임 실장 등 신진 실세 간 파워게임 설은 종종 불거졌다. 올 초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 사태도 이 전 장관과 임 실장의 알력 싸움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었다.
이와 함께 정두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이 16일 트위터에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군 인사 개입만 일삼더니만"이라는 글을 올려 김 처장을 공개 비판한 것은 정권 초부터 군 인사를 놓고 두 사람이 대립하면서 쌓인 앙금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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