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목표지점 도착에 실패했다. 눈과 가스(안개)를 동반한 낙석으로 운행 중단한다. ABC(전진베이스캠프)로 하산한다."
박영석 원정대장은 18일 오후 4시(이하 현지시간ㆍ한국시간 오후 7시15분) 전진캠프에 남은 대원들에게 무전으로 이렇게 전했다. 그 뒤 소식이 끊겼다. 이날 등반을 시작한 지 13시간 20분 만이다.
원정대는 지난 9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해발 4,250m)에 도착, 12일 남벽 전진베이스캠프(5,100m)로 이동했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원정대는 17일 오후 4시 캠프를 출발해 오후 7시40분 임시텐트(5,670m)에 도착했다. 박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 등 3명의 정상공격조가 1차 비바크 예정지(6,500m)를 향해 텐트를 떠난 건 18일 오전 2시40분이다.
정상공격조는 오전 4시10분 남벽 출발점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날 1차 비바크 예정지에 도달한 뒤 21일까지 남벽을 4구간으로 나눠 등반,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상황이 안 좋다. 가스가 많고 낙석이 많다"는 내용의 무전을 캠프로 전했다. 그리고 세 시간 뒤 하산 결정을 전하는 교신이 마지막이었다.
남벽 출발점까지 동행한 이한구 대원은 19일 대한산악연맹으로 "정상공격조와 연락이 두절됐다.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고 타전했다. 산악연맹은 박 대장 등이 실종된 것으로 판단하고 현지 셰르파 등에게 구조 작업을 요청했다. 산악연맹 관계자는 20일 "넓은 지역에서 눈사태에 휩쓸려 안전 지대로 피신하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현지 날씨가 좋은 만큼 수색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나푸르나 남벽은 히말라야 최고 난벽(難壁) 가운데 하나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표고차가 3,891m으로 에베레스트보다 400m 이상 크다. 평균 경사도는 70도에 이르며 중간중간 90도의 직벽과 오버행(경사도 90도 이상의 낭떠러지)도 있다. 특히 해발 7,000m 부근부터 시작되는 600여m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암벽 등반가들 사이에서도 '마(魔)의 벽'으로 불린다.
원정대는 알파인 스타일로 이 벽에 기존 등반로가 아닌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있다. 알파인 스타일이란 정상 정복보다 등반의 질을 추구하는 현대 산악계의 흐름으로, 셰르파 산소통 고정로프 등을 쓰지 않고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등반하는 방식이다. 정통 알파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박 대장은 2009년 에베레스트 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 '코리안 루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나푸르나 코리안 루트 개척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산악연맹은 20일 후원사인 LIG손해보험, 노스페이스 측과 함께 대책회의를 열고 22일 긴급대책반을 현지에 파견해 수색 작업을 돕기로 했다. 각각 카조리(6,186m)와 촐라체(6,440m)에 오르기 위해 히말라야에 머물고 있는 유학재 원정대(휠라스포츠)와 김형일 원정대(K2)도 등반 계획을 변경해 21일 날이 밝는 대로 수색 작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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