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욕을 5,000여 차례 왕복할 수 있는 104억원 상당의 공무 항공 마일리지가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안전부가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민간 항공사와 조율이 되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여서 상당한 마일리지가 자동 소멸될 상황에 처했다.
잠자는 마일리지만 104억원
18일 한국일보가 행정안전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중앙 정부부처의 누적 항공마일리지 4억2,491만4,089마일 중 사용분은 5,761만8,531마일로 이용율이 13.5%에 그쳤다.
아직 사용되지 않은 공무 항공 마일리지 3억6,729만5,558마일은 서울-뉴욕을 5,247회 왕복(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 서울-뉴욕 이코노미석 왕복 7만 마일 기준)할 수 있는 규모로, 왕복 항공료(200만원 기준)로 환산하면 104억9,400만원에 달한다.
항공 마일리지가 쌓이자 행안부는 지난해 공무원 여비 규정을 개정했지만 올해 이용율은 지난해(11.6%)에 비해 겨우 1.9%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특임장관실은 올해 상반기까지 각각 110만6,332마일, 26만9,285마일의 공무 항공 마일리지가 누적돼 있는데도 단 한 건도 사용하지 않아 이용율이 0%다. 감사원(2.6%) 중소기업청(3.6%) 해양경찰청(4.4%) 등도 극히 낮은 상태다.
민간 항공사와 협의 안돼
행안부는 2009년에도 마일리지 사용 활성화 지침을 내놓은 바 있다. 공무상 취득한 항공 마일리지를 기관별로 통합 관리해 이용율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당시 행안부는 공무원이 누적 항공 마일리지를 이용해 항공권을 구입할 수 없을 경우 스스로 이를 입증해야 여비를 지급했다.
그러나 이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 됐다. 대한항공 측은 "마일리지는 개인에게 준 것이라 공무원이더라도 본인만 사용할 수 있다"며 "기관별 마일리지 통합은 마일리지 제도의 근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일부 외국 항공사에서 마일리지를 개인 간에 양도하도록 허락하는 경우가 있지만 최상급 회원에게만 제한적으로 한다"며 통합 운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항공사의 좌석 예약 관행과 기관별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성수기에는 마일리지로 좌석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외출장이 많은 외교부와 달리 시 직원들은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는 최소량인 5만 마일에 못 미치는 1만 마일 미만이 전체 직원의 90%"라고 말했다.
마땅한 대안 찾기 난망
현재 상황에서 공무 마일리지 사용에 대한 해법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 민간항공사가 규정을 바꿔가며 엄청난 양의 공무 마일리지를 통합 사용하도록 허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실제로 서울시가 5월 아시아나항공에 누적 마일리지를 불우이웃에 기부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제안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항공 마일리지는 덤의 개념이지 화폐 개념이 아니라 현금처럼 자유롭게 양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국내외 항공노선 지정 권한을 가진 국토해양부가 강압적으로 민간 항공사에 마일리지 통합 운영을 강제할 경우 비난 받을 소지가 높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항공 마일리지 제도는 기업의 마케팅의 하나로,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라 어떤 식으로 운영하든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 누적 항공 마일리지가 10~12년이 지나면 소멸된다는 점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항공사는 마일리지를 개인 단위로 제공ㆍ관리하기 때문에 공무 마일리지 제도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미국 정부도 1990년대 도입한 공무 마일리지 제도를 2002년 폐지했다"고 해명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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