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23)씨는 올해 8월 중순 새벽 2시쯤 택시를 잡다가 승차거부를 당했다. 종로에서 강서구 화곡동 집으로 가려 했지만 택시기사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며 가 버렸다. 김씨는 현장에서 120다산콜센터에 승차거부 신고를 했다. 며칠 후 김씨는 서울시 공무원으로부터 '택시기사에게 지도교육을 하거나 구청에서 승차거부 처벌 심사를 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지도교육 처분에 동의했다. 택시기사는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승차거부 신고가 접수되면 먼저 서울시 교통지도과에서 신고자와 택시기사에게 확인 전화를 한다. 이때 신고자가 지도교육을 원한다고 하면 법인택시는 소속 회사에, 개인택시는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에 지도교육 처분 통보를 한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승차거부 지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서울 강서구 소재 한 법인택시회사 관계자는 "지도교육 통보를 받으면 기사를 불러 내용을 들어보고 승차거부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데, 시간은 20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있는 다른 법인택시회사 관계자도"1대 1 상담을 하는데 길게 얘기할 게 없다. 기사에게 특별히 불이익을 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개인택시조합 관계자는 "서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승차거부 신고가 접수됐으니 앞으로 승객을 잘 모시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발송한다"고 말했다.
올해 8월까지 접수된 택시 승차거부 신고 1만4,268건 중 구청에서 지도교육 처분을 내린 경우를 포함해 30%에 가까운 4,177건이 이런 식으로 가볍게 처리됐다. 과태료 이상의 실질적인 처벌 조치가 이뤄진 경우는 23%(3,373건)에 불과했다.
서울시 교통불편 신고의 74%가 택시에 집중되고, 택시 관련 신고 중 승차거부가 가장 높은 비율(38%)을 차지하는 데는 이처럼 실효성이 떨어지는 신고 처리가 한몫을 하고 있다. 현행 택시 승차거부 신고 처리에 대해 승객뿐 아니라 택시기사와 담당 공무원도 문제점을 지적한다.
승차거부 신고자가 지도교육이 아닌 처벌을 원할 경우 처리는 시청에서 각 구청으로 넘어간다. 구청에선 택시기사의 진술서를 받고 신고자에게 구체적 상황을 확인한 후 심의위원회를 열어 처벌 여부를 결정한다. 승차거부가 인정되면 과태료 20만원을 부과한다. 1년 이내에 2회 적발 때는 자격정지 10일, 3회는 자격정지 20일, 4회는 자격취소에 처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증거가 아닌 진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고 말한다. 한 구청의 교통지도과 관계자는 "음주 상태에서 신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신고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처리가 되기 때문에 신고자의 진술이 정확하지 않은 때가 많다"며 "과태료 이상의 처분을 내리기에는 애매한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들은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택시기사 홍모씨는 "과태료를 내는 사람들은 어쩌다 한번 승차거부를 하는 사람들이지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처벌을 안 받는다"며 "노하우가 있는 기사들은 창문만 내리고 가면서 원하는 행선지를 말하는 승객을 골라 태우고 신고가 접수되면 못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 구청의 담당 공무원도 "승객과 기사 사이에 대화가 성립되지 않으면 경고 처분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발표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서울시 택시서비스 향상 방안'보고서는 택시 승차거부를 근절하고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승차거부 적발 시 약 180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일본은 1차 적발 시부터 30일 운행정지 처분을 내린다.
19년째 택시를 몬다는 한 기사는 "승객들도 변해야 한다"며 "길에서 행선지를 외치면 승객을 골라 태우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일단 타고 행선지를 말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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