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 드립니다."
일제 때 군수를 지낸 할아버지를 대신해 후손이 사죄의 뜻을 밝혔다. 18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경기 군포시에 사는 윤석윤(54)씨는 지난달 초 이 단체 홈페이지에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벽돌 한 장을 올리는 심정으로 내 집안의 역사와 진실을 세상에 고한다"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생전에 뵙지 못한 할아버지가 늘 궁금했던 윤씨는 지난달 3일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인 것을 알게 됐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한 것.
윤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기사를 읽고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 초기에 군수를 하셨다면 친일파 명부에 있지 않을까 해 도서관에서 찾아봤다"며 "친일파와 그 자손은 호의호식하고, 독립운동가 후손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분개했는데 내가 친일파의 손자임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윤씨의 할아버지 윤수병은 1895년 관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 게이오대에 유학, 일제 강점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군수를 지냈다.
그는 "할아버지가 민족의 운명과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알 길이 없다"며 "을사국치와 한일강제병합의 과정 속에서 관직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셨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를 계기로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된 윤씨는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고 고생하신 많은 분과 그 자녀들에게 한 친일파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대신해 가슴 깊이 사죄 드린다"며 글을 닫았다. 한국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윤씨는 "글에서 이미 모든 걸 다 밝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책임이 더 무거운 이들의 후손들도 전혀 사죄의 움직임이 없는데 (윤씨의 사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