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신체의 움직임을 강조한 '파우스트'다.
아이슬란드의 젊은 연출가 기슬리 외른 가다르손(38)이 최근 몇 년간 유난히 많았던 괴테 원작 '파우스트'의 무대화에 방점을 찍는다. 2008년 고전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연극 '변신' '보이체크'를 들고 내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가다르손은 자신이 이끄는 베스투르포트 극단과 함께 27~30일 LG아트센터 무대에 '파우스트'를 올린다. 2009년 아이슬란드 초연 대성공 이후 영국 독일 러시아에서 공연됐고 아시아에서는 첫 무대다.
판에 박힌 연극을 거부하는 그가 이번 '파우스트'에는 어떤 혁신을 담았을지 궁금해 입국을 앞둔 그를 전화로 미리 만났다. "2008년 한국 관객의 따뜻한 환대에 단원 모두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는 그는 "전세계 모든 대륙에서 공연해 왔지만 한국은 우리가 가장 공연하고 싶은 국가 중 하나"라며 "한국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내게 파우스트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 노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생 인생의 목적을 강구해 왔지만 결국 그것을 찾는 데 실패하는 사람이죠. 노년의 삶,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잘 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닐까 싶었죠."
따라서 이번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젊은 여인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지는 뼈대만 그대로 두고 이야기의 배경을 은퇴한 노인들이 생활하는 양로원으로 설정했다. "밀실에 갇힌 듯한 양로원 노인들의 공포감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에는 객석 바닥에서부터 5m 정도 높이에 가로 11m, 세로 15m 크기의 그물을 친다. 1층 객석의 중간 정도까지 뒤덮는 이 그물 위에서 일부 장면이 진행되고 약 9m 높이의 3층 객석 발코니석에서 배우들이 이 그물로 뛰어내리는 장면도 있다.
"어렸을 때 2년간 양로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마치 감옥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물은 노인들이 밀실 같은 양로원 말고는 갈 곳이 없을 때 맞닥뜨리는 환경과 정서를 표현합니다."
강도 높은 신체의 움직임은 아이슬란드 체조 국가대표 선수를 지낸 가다르손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배우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극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저는 지루하고 뻔한 무대를 연출하고 싶지 않습니다. 연극은 줄거리뿐만 아니라 메시지의 핵심을 전하는 표현 방법도 중요해요. 관객이 그간 겪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게 연출가로서 제 역할입니다."
그가 "무대예술의 매력"으로 믿는 이 같은 연출 방식 때문에 더러 배우들은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배우가 공중의 그물 위에서 하는 연기를 두려워하죠. 허나 예술가로서 저뿐 아니라 배우들도 극한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들은 때로 다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공연을 마칠 즈음엔 새로운 시도에 동참해 즐거웠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할리우드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에 출연하는 등 영화에서도 입지를 다지고 있지만 그에게 연극은 여전히 "피와 살"이다. 하지만 신체의 움직임을 강조한 파격성도 반복되면 지루한 연극이 되지 않을까.
"저는 늘 다른 스타일을 시도합니다. 한국에서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는 '변신' '파우스트' 등이 소개됐지만 얼마 전 아이슬란드에서 공연한 '포레스트'만 해도 조용한 코미디입니다. 만약 관객이 저의 시도를 재미없다 느끼고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는다면? 그땐 구두장이(shoemaker)가 돼야겠죠."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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