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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정정렬제에 대한 삼대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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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정정렬제에 대한 삼대의 열정

입력
2011.10.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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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문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서울대 경제학부 어이빈 토마센 교수는 홀 한 켠에서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기 바빴다. 송광사 템플스테이 참가 직전, 작심하고 이곳에 들렀다고 했다.

제41회 판소리유파대제전이 열린 지난 15일 오후 3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판소리 모녀 3대의 열창을 듣기 위해 거센 빗줄기를 뚫고 모여든 귀명창들로 760석이 거의 다 찼다. 청학동에서나 볼 법한 망건 차림의 관객도 눈에 띄었다. 잘 공연되지 않는 정정렬제 판소리가 모처럼 기지재를 펴는 날이기도 했다.

무대의 주인공은 최승희(75ㆍ전북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보유자)씨와 그의 딸 모보경(48ㆍ전북 도립국악원 교수)씨, 외손녀 김하은(16ㆍ전주 용소중3ㆍ정정렬제 춘향가 전수자) 양. 특히 하은 양은 이 날이 첫 공식 무대였다. 어른들은 어릴 적 천식을 앓은 하은 양이 소리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기어이 소리의 길로 나서겠다는 본인의 뜻을 꺾지 못했다.

정정렬제는 김창환, 김채만, 정응민에게서 나온 형식과 함께 4대 서편제로 인정 받지만 막상 하는 사람이 적어 절멸의 위기에 놓인 판소리 유파다. 조각보 맞추듯 짜임이 치밀하며 섬세하고도 워낙 어려워 외면 받던 이 소리는 젊은 시절 최씨가 생활고를 감내하며 정정렬의 직계 김여란을 찾아가 6년 전수 받은 끝에 완성됐다.

이 날 무대를 기획한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은 "전승 관계가 가장 탄탄한 이들 모녀의 음반 작업을 연말께 시작할 생각"이라며 "위기에 놓인 정정렬제를 보존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이 날 진행자로 나와 적재적소에서 재치 있게 해설을 펼치며 무대를 아예 사랑방 잔치판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판소리는 아마추어 고수, 즉 귀명창의 예술이다. 이날 공연에서도 관객과 연희자는 구분되지 않았다. "그렇지", "음", "얼씨구" 등 추임새는 관례가 아니라 공연의 일부로서 무대를 풍성하게 부풀려 갔다. 신명이 오른 관객은 진행자의 말까지 "얼씨구"로 받았다. 극장 안의 모든 사건이 판소리의 판으로 거듭났다.

노씨는 앞으로 이들이 일반 관객, 특히 서울의 관객과 친해지도록 하는 게 과제라고 했다. 그런데 난망한 일이다. "(최 선생님은)겸손한데다 소박한 분이시라…." 그는 자신이 "돈을 만들어서라도" 음반 작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전북대 초빙교수로도 후학을 기르고 있는 모씨는 "(공연이든 음반이든)기회가 닿으면 가서 하겠다"고 화답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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