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사망자로 살아온 40대 남성이 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법원의 배려로 호적을 되찾았다.
이모(44)씨는 출생 직후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도 가출해 큰아버지의 아들로 호적에 등재됐다. 문제는 1992년 큰아버지가 사망했지만 어떤 친척도 이씨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친척들은 1988년 이후 고향을 떠난 이씨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고, 결국 1994년 법원에 실종선고를 청구해 이듬해 3월 이씨는 사망자로 처리됐다.
그러나 당시 이씨는 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2년째 안양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출소한 뒤에야 법률적으로 사망 상태가 된 것을 안 이씨는 호적을 살리기 위해 경찰, 검찰, 구청 등 각 기관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서류가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활고에 허덕이던 이씨는 다시 남의 물건에 손을 댔고, 이후 절도 혐의로 5번을 더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씨의 경우 법률상으로 사망상태지만, 수사기관은 경찰청 데이터 베이스에 이씨의 지문 10개가 모두 확인된 점을 근거로 이씨를 실질적 범죄자로 사법처리했고, 법원도 해당 자료를 근거로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호적상 사망한 상태에서 교도소를 전전하던 이씨는 지난해 5월 마지막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으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결국 이씨는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빌딩 앞에서 잠든 취객의 지갑을 또 다시 훔치려다 현장에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다행히 이씨 삶의 악순환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의 배려로 전환점을 맞았다. 재판부는 국선변호인인 남현우 변호사에게 실종선고 취소심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줬고, 남 변호사의 도움으로 이씨는 지난 8월 호적을 되찾았다.
이씨가 호적을 되찾자 재판부는 18일 국민참여재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법률에서 허용하는 최하 형량을 선고했으니 다시는 절도 범행을 저지르지 말라”며 이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최후진술에서 “똑같은 죄로 다시 법정에 오면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며 “교도소에서 배운 타일 관련 기술로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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