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이다.", "나는 발명을 계속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언제나 발명을 한다."
전구를 비롯해 축음기, 전화기 등 수 많은 발명품으로 인류 발전에 공헌한 토머스 에디슨이 1931년 1월 18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47년 2월 11일 미국 오하이오주 밀란에서 제재소를 경영하던 아버지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에디슨의 초년 시절은 이미 전 세계 많은 어린이들에게 신화이자 전설이 되어 있다. 직접 달걀을 품어 부화하는지를 확인해봤다는 호기심 이야기와 기차에서 신문을 팔면서 실험에 열중하다 불을 내 쫓겨났다는 실험정신, 그리고 학교에 대한 부적응으로 집에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 등은 발명왕을 꿈꾸는 어린이들의 희망이자 등불이 됐다.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열차에서 신문과 과자를 팔던 에디슨은 실험실에서 화재를 일으켜 차장에게 따귀를 얻어맞았다. 귀에 청각장애를 일으킨 이 때부터 연구에만 몰두한 에디슨은 62년 달리는 기차에 치일 뻔 한 역장 자녀의 생명을 구해준 답례로 철도전신수로 일하게 됐고 첫 발명품이 전기투표기록기였다.
주식상장표시기, 탄소전화기, 축음기, 영화촬영기, 평판유리 제조법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발명품을 양산한 에디슨은 79년 10월 22일 그의 발명 중 가장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40시간 이상 계속 빛을 내는 백열 전구를 만들어 냈다. 전기로 빛을 내는 시스템은 당시에도 있었지만 에디슨의 발명은 송전시스템과 하나가 되어 일반 가정에서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82년 세계 최초의 화력발전소인 '중앙발전소'와 '에디슨 전등회사'가 뉴욕에 설립됐고 이후 전기의 가정 이용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산업과 공업 발전의 토대를 이뤘다. 89년 하나의 회사로 모아진 에디슨 계의 각 회사는 92년 다시 '톰슨휴스턴' 전기회사와 합병해 현재의 'GE(제너럴 일렉트릭)'로 변모했으며 'GE'는 현재 세계 최대의 종합 전기회사로 우뚝 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밀란의 사저는 사적으로 지정됐고 연구소는 지금 박물관으로 쓰인다. '21세기의 에디슨'으로 불리기도 했던 스티브 잡스마저 떠난 오늘, 혁신과 상상으로 끊임없는 창조를 계속한 그들의 발명가 정신은 후세의 배움이 되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