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피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통로에 들어갔다 여러 대의 차량에 치여 숨진 노숙자(한국일보 10월 17일 11면 보도)는 차가운 시신이 되어서야 어려서 헤어진 장애인 딸과 22년만에 재회했다.
17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13일 오후 송파구 마천동 S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에 치여 숨진 노숙자 박모(55)씨에겐 올해 25세인 딸이 있었다. 하지만 14일 무참하게 훼손된 박씨의 시신과 마주한 이 딸은 세 살 때 아버지와 헤어져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전북 군산시에 사는 박씨의 딸은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와 어렸을 때 헤어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사위 김모(50)씨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장인의 시신을 기꺼이 인도받기로 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지만 장인도 부모인데 당연히 제가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진술했다.
박씨의 딸은 지체장애 3급. 그는 비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지금은 8세 초등학생 아이를 둔 주부가 돼 있었다.
경찰은 앞서 박씨가 사고를 당한 뒤 유가족을 찾기 위해 가족관계등록부를 뗐고 등록부상에 유일하게 올라 있는 딸을 확인했다. 경찰은 통신사에 휴대폰 전화번호 조회를 의뢰했고 군산에 있던 딸과 연락이 닿았다.
박씨가 지하주차장에 간 이유는 뒤늦게 확인됐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씨는 평소 S아파트 옆 개천에 있는 벤치에서 잠을 자곤 했다. 하지만 사고 당일에는 비가 왔고 박씨는 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지하주차장 통로로 들어갔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대략 13년 전부터 문정동과 마천동, 가락동 일대에서 노숙을 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 10시간 넘게 문정동과 가락동을 오간다는 운전학원 강사 김모(52)씨는 "도로주행을 하며 박씨를 하루에 2, 3번씩은 봤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박씨는 특정한 생계수단이 없었고, 주민들이 주는 돈으로 근근이 지냈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셔 취한 상태가 많았고 일부 주민들은 "약간의 정신이상 증세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박씨 위로 지나간 차량 4대 중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차량을 찾기 위해 박씨의 시신을 부검했다. 또 박씨 위로 지나간 차량의 운전자 2명을 추가로 불러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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