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지원 끊고 시민은 외면하고… 기업·대학 등 민간이 참여해야
직원 평균연령은 73.6세. 독거노인에게 배달되는 반찬은 무료로 배송해 주고,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아예 비용을 받지 않는다. 지역 주민은 10% 싼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착한 기업'이 지금 위기에 놓여있다. 사회적 기업 'SK지하철택배' 얘기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SK지하철택배는 한때 주목 받던 사회적 기업이었다. 2008년 7월 택배회사로는 최초로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사회적 기업이 됐다. 그러나 지난 8월 정부로부터 3년 동안 받아왔던 인건비 지원이 끊기면서 기로에 섰다. 당장 90만원씩이던 월 급여가 9월부터 32만원으로 깎였다. 몇몇 직원들은 떠났다. 배송물량이 들어와도 사람이 없어 처리를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손님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SK지하철택배 관계자는 "취약계층인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30여만원의 용돈을 챙겨준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지탱하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으니 우리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더 있느냐"고 씁쓸해했다.
사회적 기업이 겪는 악순환
3년 전만 해도 각광 받던 사회적 기업이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되는 인건비로 유지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지원 없이 사회적 기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다. 무엇보다 장기 계획을 갖고 사회적 기업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투자를 하는 곳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기반이 없다 보니 돈을 대겠다고 나서는 곳도 드물고 은행 대출도 여의치 않다. 한 제조업 관련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 육성법에 최저 2%의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놓았지만 없는 재정에 담보를 요구하니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인증된 사회적 기업에 제공하는 정부의 컨설팅 지원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한 보육 관련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노무 컨설팅을 받고 싶어서 컨설팅회사의 명단을 봤는데 도움이 될 만한 곳이 없어 신청하지 않았다"며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오히려 컨설팅 업체에 사회적 기업이 하는 일을 설명해줘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말했다.
입지 다진 사회적 기업도 어렵기는 매한가지
청각장애인 화상전화기를 제조 판매하는 씨토크 커뮤니케이션즈(이하 씨토크)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수익이 남지 않아 대부분의 기업들이 마다했던 이 시장에 지난 6월 대기업을 최대주주로 한 K통신회사가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씨토크 관계자는 "오랫동안 우리가 개척해 온 시장인 데다 수익이 많이 나는 서비스도 아닌데 K사가 들어와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큰 기업이 무리하게 작은 시장에 진입해 이럴 수 있느냐고 호소나 하는 정도"라며 한숨을 쉬었다.
특히 취약계층 일자리 사업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은 일반 기업과 경쟁이 안 될뿐더러 부정적 인식과도 싸워야 한다. 한 식품 관련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취약계층을 고용해 이들의 노동생산성을 올리고 동시에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내라고 하는데 쉽지 않다"며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하면 구매를 꺼리는 등 사회적 기업에 대한 삐딱한 시선도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입지를 다졌다곤 하는 사회적 기업들도 이러저러한 장애에 점점 힘이 빠지는 양상이다.
이제는 민간으로 바통 넘겨야
사회적 기업이 굳건히 자리를 잡은 외국의 경우 정부 지원보다는 시민들의 높은 참여가 원동력이 됐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가를 위한 사회적 기업 아쇼카 재단은 정부의 지원 없이 개인과 기업의 기부금으로만 운영된다.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하는 '펠로(fellow)' 프로그램으로 대상 기업을 선정, 3년간의 생활비와 활동비를 지원한다. 여기서 회수된 돈은 다시 다른 사회적 기업을 돕는 데 활용된다.
영국의 캔도 한국의 모델이 될 법 하다. 캔은 사회적 기업을 위한 커뮤니티, 벤처 프로그램, 기업과 사회적 기업의 간부를 연계해주는 멘토링 제도 제공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시스템은 한국에 없는 부분이다.
정부 주도인 우리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한국의 경우 함께 일하는 재단, 하자센터 등 소규모 민간 기업 지원재단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영향력이 미미하다. 사회적 기업가 지원단체인 씨즈의 이은애 혁신지원사업단장은 "시민사회가 주도하면서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정부 주도이다 보니 그렇지 못하다"며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환경을 만들려면 지역 내 기업, 대학 등 다양한 민간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 18일 '국제 사회적 기업가 콘퍼런스' 개최
돈, 시장성, 훌륭한 인재…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정부가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시행한 지 5년째로 접어들었지만 국내 사회적기업의 현실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열악한 여건에서 사회적 기업가들의 꿈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사회통합과 일자리 제공이라는 사회적기업 본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세계적 사례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아름다운가게는 18일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2011 국제 사회적기업가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는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사회’.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기업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장형’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국내외 기업가 9명을 초청, 이들의 경험담을 통해 사회적 환경 조성에 대해 논의한다.
컨퍼런스는 사회적기업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환경으로 사회적 투자, 지원 기관, 사회적 기업가 3가지를 꼽고 각각의 세션을 마련했다. 첫 번째 세션인 ‘사회적 투자’에서는 투자 대상, 선정기준 등 구체적인 투자방법과 효과, 한계 등을 공유한다. 15년간 325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약 560억원을 투자해 온 아일랜드 최대의 사회적 금융지원기관 ‘클란 크레도’의 짐 보일 금융수석이 투자 노하우를 소개한다. 아시아의 사회적기업들을 지원하는 태국의 ‘체인지 퓨전’ 창립자 수닛 쉬레스타, 국내 친환경 의류기업 ‘오르그닷’의 창립자 김진화 대표도 연사로 나선다.
두번째 세션 ‘지원기관’에서는 정부, 시민사회, 기업차원에서의 사회적기업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사회적기업이 가장 잘 발달돼 있는 영국에서 최고의 사회적기업 지원기관으로 꼽히는 ‘레드 오커’의 창립자 우대이 태커 상임이사가 사회적기업에 대한 교육과 컨설팅에 대해 발표한다. 홍콩의 시 정부와 민간은행이 함께 운영하는 ‘홍콩 사회적기업 비즈니스센터’의 제시카 탐 선임팀장과 국내 민간 연구소인 희망제작소의 문진수 소기업발전소 소장도 독창적인 사회적기업 지원 방법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기업가’에서는 베트남의 시골 마을과 최초로 친환경 관광 사업 모델을 개발한 ‘에코라이프’ 창립자 응우이엔 투 후씨가 경험담을 소개한다. 또 유료 교육 콘텐츠로 수익을 내 저소득층 학생들을 무료로 멘토링해 주는 ‘공신닷컴’의 강성태 대표, 국내 사회적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시민 투자’를 이끌어 낸 친환경 여행기업 ‘트래블러스맵’의 변형석 대표도 연사로 나선다.
송기호 아름다운가게 사회적기업센터 팀장은 “기존의 사회적기업 육성 방안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질적인 성장을 위해 정부 민간 기업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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