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발표된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초안에서 독재정권의 폐해나 산업화 과정의 문제점 등이 모두 빠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8월 고시 직전 ‘민주주의’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졸속 변경해 물의를 빚었던 ‘초중고 역사교육과정’이 그대로 적용된 것으로,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미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이날 경기 과천시 국편 대강당에서 개최한 공청회에 제시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초안’은 현대사 영역에서 자유민주주의 발전, 경제성장, 대중문화발달, 국제교류확대 등 4가지의 발전에 초점을 맞췄다. 구체적으로 ‘4ㆍ19 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정치변동과 민주화운동, 헌법상의 체제 변화와 그 특징 등 중요한 흐름을 중심으로 설명한다’‘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과정과 성과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따라 대중문화가 발전하였음을 서술’ 등이 포함됐다.
이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현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과 ‘2010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 해설서’에서 ‘이승만 정부의 장기독재’‘박정희 정부는 정치적으로는 독재체제를 강화’‘1980년 신군부 정권의 독재에 맞서’ 등 민주화운동의 배경으로 명시한 ‘독재’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새 집필기준은 경제성장의 부정적 측면을 기술토록 한 부분도 삭제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가중심주의적으로 역사를 기술토록 하면서 지난 역사의 잘못에 대한 성찰이 총체적으로 빠져 있다”며 “특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가 들어간 유신헌법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정으로 미화할 우려까지 있다”고 말했다.
새 집필기준은 또 ‘대한민국이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명시했으나, 이는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임종명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1948년 유엔총회 결의는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유엔임시위원단의 협의 및 감시 하에 선거가 실시된 38선 이남 지역에 한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새 집필기준은 한국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 발전 과정으로 단선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며 “과거 20세기 자기중심적 대결주의의 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다시 과거의 대결의식을 고취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교과부는 자유민주주의 용어 졸속 변경과 관련한 학계의 계속되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개편 작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국편이 이날 공청회 의견을 수렴해 다음주쯤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안을 교과부에 제출하면, 교과부는 이 기준에 따라 출판사들이 집필한 교과서를 내년 4월까지 검정 신청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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