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마치기 무섭게 답이 나왔다. 여린 목소리에 담긴 내용은 거침 없었고, 뚜렷한 주관이 어려 있었다. 앳된 용모와 나이에 비해 성숙한 모습, 유아인(25)의 첫 인상이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역할로 젊은 여성들의 로망이 된 그를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순진한 듯하면서도 까칠하고, 냉소적인 듯하면서도 따스한 면모를 지닌 그는 영화 '완득이'의 개봉(27일)을 앞두고 있다.
김려령의 동명소설을 밑그림 삼은 '완득이'에서 유아인은 장애인 아버지와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불우한 고교생 완득이로 등장한다. '성균관 스캔들'로 기껏 구축한 성년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린 셈. "누가 봐도, 내가 봐도 인기에 득이 안 되는" 역할. 유아인은 "시나리오를 읽고 불쌍하면서도 착하고 조숙한 완득이에게 마음이 가버렸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완득이'는 진폭 큰 드라마로 커다란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지도, 무리한 설정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따스한 일상의 모습과 자잘한 웃음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물러나며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안긴다. 비뚤어질 듯하면서도 일탈하지 않는 완득이, 그런 완득이에게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교사 동주(김윤석)의 사연 등이 유쾌하면서도 진솔하다. "착하고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재미있는 EBS 같은 영화"라는 유아인의 호언장담이 허언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개봉 앞두고 걱정이 돼요. 잘될까 봐. 영화가 잘된 적이 없어서 성공에 대한 준비가 아직 안 돼 있거든요.(웃음)"
완득이는 유아인에겐 하나의 실험이다. "'성균관 스캔들' 하며 나이 들어 보이려고 별의별 짓 다하고선" 다시 고등학생 교복을 입었기 때문. 유아인은 "스물 다섯 먹은 배우에게 동안은 약점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또 먹히니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영화주간지에 '완득이' 출연과 관련한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조리 있고, 재치 있는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직접 쓴 게 맞냐"고 묻자 "제가 직접 썼다고 거기 나오는데도 다들 의심한다"는 답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글 쓰기 좋아하니) 책도 많이 읽겠다"고 되묻자 그는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독서량 많다고 예전엔 뻥도 쳤지만 사실 독서량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집에만 있으니 책이나 영화 보고 감성을 키우는 거예요. 전 밖에서 부딪히는 시간이 많아요. 이태원도 나가고 명동도 돌아다니고. 모자 쓰고 다니냐고요? 그럴수록 더 튀어요. 전 그냥 수더분하게 입고 다녀요."
그는 '타진요'(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를 주장한 네티즌들)에 대한 비판 등 거침 없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일상을 담은 케이블채널 엠넷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런치 마이 라이프' 때문에 대중들에게 "싸가지 없다"는 인상도 준다. 그래도 유아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이 날 힘들게 해도 입을 닫자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선배 배우들과 우리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제가 까칠해 보이거나 싸가지 없어 보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제 전부인양 생각하면 오해죠. 저는 누구보다 예의 바르고 경우도 있어요. 착하고 여리지만 독종이기도 하죠. 그 모든 게 다 제 안에 있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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