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허의 대접전이다. 시장을 놓고, 특허를 놓고 정보기술(IT)업계의 거포 삼성과 애플이 이렇게 정면으로 맞붙은 경우는 전례 없는 일이다. 그 만큼 지난 해부터 벌어지고 있는 이 빅매치에서 힘의 균형추가 어디로 기우느냐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업계의 미래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먼저 스마트폰 부문을 보자. 지난해 상반기 삼성은 초긴장 상태였다. 애플 아이폰에 주도권을 빼앗긴데다, 새로 출시한 갤럭시S가 시장에서 통할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삼성은 애플의 맞상대는커녕 대만의 HTC한테도 밀리는 형국이었다.
반전 카드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미국의 유력 잡지인 포브스가 애플의 독주에 대항할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주자로 삼성을 지목했고, 다시 월스트리트저널이 갤럭시S를 집중 조명하면서 애플-삼성의 글로벌 양강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물론 여기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도 인정했듯이 삼성의 뛰어난 하드웨어 제조 능력이 바탕이 됐다. 삼성은 지난해 3분기 HTC를 제치면서 애플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붙었고, 올 3분기에는 사실상 어깨를 나란히 했다.
위협을 느낀 애플은 삼성에 '디자인 베끼기 대장(Copycat)'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지난 4월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은 비장의 반격 카드로 통신기술 특허를 꺼냈지만 네덜란드 법원에서 외면을 당하고, 독일과 호주에서 잇따라 져 수세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
결정적 고비는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판결.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법원은 최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애플의 판매금지 가처분에 대한 판결을 유보했다. 삼성이"애플의 일부 디자인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보이나 애플 역시 자신들 특허의 유효성을 더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해 삼성에 숨통을 터준 것이다.
삼성과 애플의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애플을 상대하는 삼성의 힘이 달린다는 점이다. 한 기업의 축적된 역량이 결코 간단치 않다고 생각은 되지만 "삼성에 애플처럼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나"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삼성은 애플을 넘을 수 없는 것일까.
사실 삼성과 애플은 한국과 미국만큼이나 다른 회사다. 기업의 탄생이나 철학도, 업무프로세스도 그렇다. 어쩌면 애플은 '홈런'형 기업이다. 가끔 삼진아웃도 당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 이제까지 없었던 획기적 제품으로 판세를 뒤집는데 능한 반면 삼성은 시장에서 팔리는 좋은 제품으로 변함 없이 '안타'를 쳐내는 기업이다. 삼성은 애플 같은 감동은 없지만,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 플랫폼이 뒤집혀도 따라잡는 저력이 있다. 하지만 '안타제조기'라도 적시에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다는 점, 이를 위해 근본적인 질적 진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점이 이번 애플과의 전쟁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의 목표, 수시로 "월드베스트를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뛰어야 한다"는 위기경영을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다르게 생각하자"는 애플의 비전처럼, 삼성맨들의 심장을 뛰게 할 좀 더 강력하면서도 구체적인 철학과 비전을 가다듬어야 한다. 안타는 물론이고 2루타, 3루타를 무시로 쳐내고, 그래서 꼭 필요할 때 제대로 담장을 넘길 있는 상상력과 창조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애플을 넘어 디지털시대의 챔피언 자리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16일(미국 현지시간) 잡스 추모식에서 애플 최고경영장 존 쿡을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가장 먼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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