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인증 사회적 기업 565개… 47%가 단순 일자리 제공
2007년 7월 사회적 기업 육성법 시행과 함께 시작된 정부의 대대적인 사회적 기업 지원이 5년째로 접어들었다. 복지 교육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취약계층의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키우겠다며 쏟아냈던 지원으로 그 동안 정부 인증 사회적 기업만 565개로 늘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기업 가운데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그런 기업들도 허약한 재정적 기반, 사업 전망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인증한 사회적 기업 중 상당수가 보육 간병 청소 등 단순ㆍ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점도 문제다. 현장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정부가 초기 투자가 필요 없는 업종에서 단기 일자리만 늘리는 식으로 지원하고 있어 기업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단순 노동형 일자리에 치중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사회적 기업 565곳의 유형을 한국일보가 분석한 결과, 과반인 321개(57%) 기업이 일자리 제공형이었다. 노동부 분류 기준으로 청소용역업체, 간병ㆍ가사노동업체, 장애인재활센터 등이 일자리 제공형 기업에 속하는데, 사회서비스 제공형(28%), 일자리 제공 및 사회서비스 제공 혼합형(13%), 기타(2%)를 모두 합한 것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사회적 기업을 업종별로 분류해도 교육 문화 예술 관광 업종은 109개(19%)에 불과한 반면, 상대적으로 단순 노동이 많은 보육 간병 가사 사회복지 보건 환경 업종은 267개(47%)에 달했다.
특히 전 업종에서 복지법인이나 재단 등이 운영하는 기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보육관련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노동부가 인증을 남발하며 정부가 제공해야 할 공공복지 영역까지도 싼 값에 사회적 기업에 떠넘기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 수명, 길어야 3년
사회적 기업 일자리 대부분이 단순 반복 노동이라는 점도 문제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대부분 수명도 짧았다. 노동부는 인증 사회적 기업에 대해 최장 3년 동안 노동자 1인당 최저 임금의 50~90%를 인건비로 지원해 주는데, 노동부의 지원으로 취약계층 수십명을 고용했다가도 지원이 끊기면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일보가 인증 사회적 기업 중 약 10%에 해당하는 60개 기업을 전화로 설문 조사한 결과, 43%가 정부 지원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노동부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부응하려고 신규 고용 유발을 위한 인건비 지원에만 힘을 쏟는다는 것. 경기도의 한 친환경 먹거리 기업 대표는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일자리 창출의 도구로만 바라본다"며 "일자리 수 늘리기에 급급해 인증을 남발하다 보니 결국 인건비 지원에 의존했던 기업은 지원이 끝나면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 건설관련 사회적 기업 대표도 "인건비를 지원받아 고용은 늘렸지만 업종 특성상 고용만으로 장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며 "정부가 각 업종의 성격과 규모, 환경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사업개발비 시설투자비 등 맞춤형 지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예비 사회적 기업 지정 남발도 문제다. 예비 사회적 기업은 향후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기업으로, 그 수만 1,000개가 넘는다. 지자체끼리 사회적 기업 발굴 경쟁이 붙으면서 업계에서는 "구청 공무원이 신청서를 다 써와 사인만 받아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양적 팽창의 부작용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회적 기업 생태계 만들어야"
이러한 부작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관계자는 "각국의 상황에 맞춰 사회적 기업이 발달하는데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시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이 등장, 일자리 위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며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드는 사회 서비스 업종에 몰리는 현상은 모든 국가들이 초기에 경험했던 문제"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가 지원단체인 씨즈의 이은애 혁신지원사업단장은 "국내 사회적 기업은 정부 의존도가 심한 만큼 공공조달시장 형성, 기업간 네트워크 활성화 등을 통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 지원 방식 역시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인건비 지원을 유지하되 연구개발비 시설투자비 등 기업의 특성에 맞게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아름다운 가게·노리단·위캔 쿠키… 이름난 곳도 "힘들다"
아름다운 가게, 노리단, 위캔 쿠키.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사회적 기업들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이 고사(枯死)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용케 뿌리를 내리고 살아 남았다. 하지만 이 기업들도 속앓이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좋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사회적 기업의 숙명과도 같았다.
2002년 10월 서울 안국동 1호점으로 출발한 아름다운 가게는 전국에 110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2007년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제1호 사회적 기업으로 업계의 대표주자다. 인증된 사회적 기업 중 매출 규모도 가장 크다. 첫 해 1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180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재정적 기반은 여전히 불안하다. 아름다운 가게 관계자는 "우리의 재정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무급인 약 5,000명의 자원봉사자로 매장이 운영되는 등 아직 노출되지 않은 비용을 고려하면 그 기반은 허술한 편"이라고 말했다. 300명의 간사들이 월 평균 150만원의 박봉을 받으며 헌신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혜택은커녕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세금 구조도 부담이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판매하는 재활용품에는 일반 제조회사에서 만든 제품보다 부가가치세가 더 붙는다. 아름다운 가게 관계자는 "일반 기업은 원가 500원의 물건을 1,000원을 받고 팔 때, 이윤 500원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떼는 데 반해 우리는 재활용품의 원가를 산정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1,000원 전체에 대해 세금을 물고 있다"며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초기부터 문제를 제기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국내 첫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도 운영비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4년 11명으로 단출하게 시작한 노리단은 현재 86명이 넘는 대가족이 됐다. 하지만 공연이 주수입원인 노리단은 돈을 버는 데 한계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이 하는 공연을 돈을 주고 본다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문화운동 성격도 강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원이 없다"며 "사회적 가치를 좇으면서 경제성까지 갖추기는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인증 사회적 기업에 지원하던 인건비가 3년 만에 끊기자 직원의 절반 이상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위캔쿠키 사연도 비슷하다. 위캔쿠키는 원래 있던 장애인 재활시설이 문을 닫자 2007년부터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쿠키를 구워 납품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변신해 각광 받았다. 그러나 위캔쿠키 관계자는 "그나마 장애인시설로서의 기본 인프라가 있었던 탓에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쿠키를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이 팔 수 있도록 하는 설비 지원인데 정부는 그런 쪽 지원에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인경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사무국장은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원 확대와 함께 자본조달 확대, 유통 네트워크 확충 등 기업에 대한 간접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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