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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주민들 일자리 얻고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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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주민들 일자리 얻고 '재기'

입력
2011.10.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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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파!(미도파 빌딩)" "미도파!" "변호사!(변호사회관 빌딩)" "변호사!"

12일 오전 8시30분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빌딩 앞 공터. 사내들의 외침이 돌림노래 하듯 울려퍼졌다. 작업반장 박용수(47)씨가 트럭에서 택배 상자를 내리며 배송지를 외치자 상자를 받아든 김종원(46)씨가 따라 외쳤다. 눈 깜짝할 새 두 대의 택배차량이 싣고 온 350여개의 크고 작은 상자가 배송지 별로 분류돼 바닥에 쌓였다. 이곳은 길품택배의 거리 사무실이고 일하는 이들은 창신동 쪽방촌 주민들이다.

길품택배는 지난해 7월 종로구청과 동대문쪽방상담센터가 쪽방촌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현재 쪽방촌 주민 4명이 구청에서 나온 2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CJ 현대 한진 로젠 등 4개 택배사에서 접수받은 종로구청과 광화문 일대의 상가, 주상복합건물 배달 물건을 손수레에 담아 전달하는 게 주요 업무다.

내수동을 담당하고 있는 김종원씨는 2002년 아내가 집을 나간 후 인생이 뒤바뀌었다. 매일 술로 지내다 신용불량자가 됐고, 그즈음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김씨는 "겨울엔 정말 견딜 수 없이 추워서 하루에 8,000원하는 종로3가 쪽방에서 지낸 적이 수두룩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던 그가 길품택배에서 한 달 일해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택배사로부터 받는 배송수수료(건당 300원)와 구청 지원금(1인당 50만원)을 보태 쪽방상담센터가 월급을 주는 식이다. 그러나 김씨는 "월급이 많지는 않아도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좋다"면서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어서 이 일이 일용직 노동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솔직히 돈은 많이 못 벌지만 보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최봉규(46)씨는 10년째 창신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다. 최씨는 "중학교 2학년인 딸에게 아빠로서, 길품택배 기사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몸이 부서질 때까지 일을 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오후 5시20분쯤 이날의 모든 택배 업무가 종료됐다. 송장 정리 업무를 맡고 있는 조인순(51)씨는 이 일을 시작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조씨는 "건강 악화로 재산을 다 날리면서 이혼하고 집안에서 두문불출하며 살았다"며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니 성격도 밝아지고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김현희 쪽방상담센터 팀장은 "40~50대의 주민들이 몸 쓰는 일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닌데 다들 불평 한마디 없이 열심히 한다"면서 "쪽방촌 주민들이 자활의지를 갖게 되고 희망을 되찾은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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