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애플과 특허전쟁에서 수세를 반전시킬 '플랜B' 가동에 들어갔다.
애플의 손발을 묶을 수 있는 필승 카드로 생각했던 3세대 통신기술특허가 지난 14일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에서 외면당함에 따라, 삼성전자는 현재 비상이 걸린 상태. 게다가 네덜란드 2건, 독일 1건, 호주 1건 등 현재까지 4개 법정에서 나온 판결만 봐도, 1승3패로 삼성전자는 소송 전쟁 초반판세에서 애플에 밀리는 형국이다.
때문에 삼성전자는 1차 카드가 수포로 돌아가자 상황반전을 위해 또 하나의 비장의 카드를 준비 중이다. 자칫 여기서 공격의 고삐를 늦출 경우, 특허전쟁의 주도권 자체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조속한 상황 반전을 위한 새로운 공격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삼성전자 내부 판단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16일 "우리에게 애플을 상대할 무기가 꼭 통신기술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삼성에서 이런 것도 특허까지 갖고 있구나'라고 할 만한 것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격 루트 다변화
삼성전자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플랜B엔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 있을 까. 일단 거론되는 것은 이른바 '기능성' 특허들이다. 기능성 특허란 통신기술특허나 디자인특허와는 달리 사용자가 재미나 편리함을 느낄 수 있는 기술들, 예컨데 터치방식이나 진동 색상변화 같은 이용자사용환경(UI) 관련 특허를 말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우리는 의외로 많은 기능성 특허를 갖고 있다"며 "이 중 애플을 상대로 할 것들에 대해 현재 실무팀에서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새로운 기술특허를 소송 무기화함으로써, 기존의 플랜A(3세대 통신기술특허)와 플랜B를 병행 구사한다는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에서 통신기술 특허주장을 기각했다고 해서 이 기술 자체가 무력화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른 나라 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통신기술특허 관련소송은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측은 이와 관련, 통신기술 이외의 다른 특허로 소송을 제기할 지역과 시기는 현재 진행 중인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 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 공세 더 가속할 듯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의 지난 14일 판결은 '비용만 내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의 이른바 '프랜드'조항에 기반한 것. 삼성전자가 최근 이탈리아와 프랑스 법원에 제기한 아이폰4S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소송 역시 이 프랜드 조항에 해당되는 표준통신기술이란 게 애플측 주장이다. 애플코리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갖고 있다는 통신기술은 거의 대부분 비용만 내면 얼마든지 사용 가능한 표준기술 특허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애플에겐 큰 위협이 될 수 없다"며 프랜드 조항을 최대한 이용할 것임을 내비쳤다.
애플은 이와 함께, 삼성전자 통신기술 특허가 들어간 반도체 칩 생산업체인 퀄컴 등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통신기술특허는 삼성전자와 퀄컴의 문제이고, 애플이 사서 쓰는 건 반도체 칩인 만큼, 통신기술특허는 애플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애플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지방법원에 "아이폰4와 아이폰4S에 쓰이는 칩셋은 퀄컴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에 직접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삼성전자 통신기술특허침해 제소에 대한 무효 소송을 신청했다.
유럽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플로리언 뮬러는 "삼성 측이 프랜드 규약에 얽혀 있는 표준특허만 주장해서는 승산이 낮다"며 "안테나 기술 같은 강력한 하드웨어 기술특허도 함께 내놔야 애플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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