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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기억 지우는 치료… 개발되면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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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기억 지우는 치료… 개발되면 해도 될까

입력
2011.10.1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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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의 뇌는 대개 전전두엽(앞쪽 뇌)에 문제가 있다. 부산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는 측두엽(옆쪽 뇌) 간질을 앓았다. 그들은 살인자다. 뇌질환자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살인자의 뇌는 따로 있는 걸까. 그럼 우등생의 뇌, 정치인의 뇌도 있을까. 이런 질문에는 뇌가 모든 행동을 좌우한다는 시각이 녹아 있다. 이른바 '신경결정론'이다.

신경결정론은 21세기 골상학

신경결정론은 1990년대 등장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이 개발돼 널리 쓰이면서부터다. 뇌를 촬영하는 이 기기를 이용해 전 세계에서 매년 1만건 이상의 논문이 발표된다. 그러나 fMRI을 맹신하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짓말과 관련된 뇌 영역이 어딘지 실험한다고 하자. fMRI은 먼저 거짓말할 때와 그냥 말할 때 뇌를 촬영해 겹치는 부위를 찾는다. 그런 다음 겹치는 영역을 뺀 나머지를 보여준다. 이 부분이 거짓말을 관장하는 영역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과 관련된 뇌 영역 중 일부일 뿐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신경인문학연구회장)는 "fMRI 영상만 보고 뇌의 부위별 기능을 판단하는 건 성급한 일"이라며 "사람의 행동은 뇌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오밀조밀 연결된 여러 부위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뇌의 특정 영역이 어떤 행동을 결정한다는 신경결정론은 여전히 영향력이 세다. 홍 교수는 "신경결정론은 두개골의 모양으로 사람의 특성을 알 수 있다고 했던 골상학의 현대판"이라며 "이런 사고가 심해지면 뇌의 생김새에 따라 우성과 열성 사람으로 나누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신경약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이처럼 신경과학과 관련된 문제를 윤리적으로 살펴보자는 공감대에서 나온 게 신경윤리학이다. 신경윤리학에선 fMRI만큼이나 신경약물 사용과 기억 변경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리탈린은 현재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로 쓰인다. 정상인이 이 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아진다. 낙후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리탈린을 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과 교육 격차를 좁히는 게 정당한 일일까.

신경윤리학자 사이에선 의견이 갈린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학습 능력을 일시적으로 높일 수는 있어도 결국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그 학생은 약물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홍 교수는 "약물 남용 사회가 되지 않도록 엄격한 규정을 두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기억 변경에 관해선 대체로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기억을 지우거나 삽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억은 그 사람의 자아를 이루는 핵심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권준수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폭행, 자연재해, 전쟁 후유증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아 일상 생활이 힘든 사람에게서 그 끔찍한 기억을 지우는 건 일종의 치료"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 신경윤리학연구회 해체 위기

신경윤리학은 2000년대 초에 생겨난 신생 학문이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실제 미국 스탠퍼드대, 영국 옥스포드대 등 해외 유명 대학에선 신경윤리센터를 세우고 연구를 장려한다. 신경과학이 발전할수록 이를 바라보는 윤리적 관점도 중요해질 거란 생각에서다.

국내 신경과학 기술은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정도지만 신경윤리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 현재 신경윤리를 담당하는 정식 연구소는 국내에 한 곳도 없다. 신경윤리학에 관심 있는 교수와 박사 20여명이 모여 2009년 꾸린 신경인문학연구회가 유일한데, 이마저도 해체 위기다. 해외 석학 초정강연, 출판 등 다양한 활동에 필요한 연구비를 지원받을 곳이 내년부터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국내 신경윤리 연구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신경과학은 연구 성과 못지 않게 이를 어떻게 바라볼지 사회적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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