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저술한 형법서 흠흠신서(欽欽新書)에 기록된 조선시대 최악의 패륜사건 중 하나인 '평산 박조이 살인사건'. 정조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암행어사 이곤수를 파견했고, 이곤수는 무원록(無寃錄)을 토대로 수사를 벌인 끝에 자살로 결론났던 사건을 타살로 판명한다. 무원록은 한자 풀이 그대로 원통함이 없도록 하는 책으로 살인사건의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리기 위한 조선시대 수사지침서다.
17~19일 밤 9시 50분 방송하는 EBS 다큐프라임 '무원록-조선의 법과 정의'는 무원록을 소재로 한 3부작 다큐드라마. 조선시대의 합리적인 형사제도와 과학적인 수사기법, 법 집행자의 굳은 의지를 조명한다. 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법 집행 원칙과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한다.
1부 '억울함을 없게 하라'는 초검(시신을 처음 검안하는 것)과 복검은 물론, 의혹이 남을 경우 삼검, 사검까지도 불사했던 당시 형사제도를 박조이 사건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2부 '자살과 타살'에서는 무원록의 기록을 통해 조선의 법의학 지식을 소개한다. 증거를 인멸한 흉기 살해의 경우 흉기에 고초(강한 식초)를 발라 숯불에 달궈 혈흔을 찾고, 독살 추정 시신의 식도에 은비녀를 밀어 넣었다가 꺼내 변색 여부를 살피거나 입에 백반을 넣어두었다가 닭에게 먹여 죽는지를 지켜보는 등 당시에도 여러 과학적 수사기법이 존재했다. 3부 '최소한의 정의'에서는 법과 정의의 실현이 인정(人情), 상의한 도덕률, 권력이나 이해 관계의 개입으로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지를 짚어본다. 박조이 사건 해결은 그때까지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금지됐던 굴검(무덤을 파내는 것)을 허용하면서까지 진실을 파헤치려는 최고통치자 정조의 법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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