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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번듯한 지하철역 세이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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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번듯한 지하철역 세이프존

입력
2011.10.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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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밤 0시 20분, 숙명여대생 김모(24ㆍ인문학부)씨는 서울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바로 옆에서 만취한 두 남성의 싸움을 목격했다. 한 남성의 코와 입에서 피가 쏟아질 정도로 과격한 싸움이었다. 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고 해서 김씨는 공포를 느꼈지만 싸움을 제압하기 위해 어느 역무원, 안전요원도 오는 이가 없었다.

김씨가 서 있던 곳은 심야시간대 범죄예방을 위한 시민집중보호구역인 세이프 존(Safe Zone).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지난 7월부터 이용객이 적어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5개 역(상왕십리 동묘앞 잠실나루 학여울 숙대입구역) 승강장에 시범 설치해 운영하는 열차 한 량 크기의 공간이다. 안전을 상징하는 녹색 원으로 표시된 이 구역은 다른 곳보다 조도가 밝고 이곳만 비추는 폐쇄회로(CC)TV, 역무원과 바로 연결되는 비상통화장치가 있으며 공익요원들이 집중 순찰하게 돼 있다. 세이프 존은 지난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사당역 승강장에서 발생한 강간치상 사건이 계기가 돼 설치됐다. 안전지대라고 생각한 역내에서 벌어진 일에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고 이후에도 지하철 안팎의 성범죄가 끊이지 않자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시범 설치 100일(10월 8일)이 지났지만 제대로 홍보ㆍ운영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김씨는 "세이프 존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데도 역 당국이 알지 못한다면 뭣 하러 만든 거냐"며 "내가 당시 있던 곳이 세이프 존이란 걸 알았다면 비상전화를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이프 존이 설치된 2호선 상왕십리역 승강장에서는 심야시간대(오후 11시~오전 1시) 집중 배치된다던 공익요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승강장에 설치된 두 대의 CCTV 중 한 대는 엉뚱하게도 세이프 존과 반대 방향을 비추고 있다. 공익요원이 순찰하지 않는다면 세이프 존에 있는 승객의 안전은 CCTV 한 대에 맡겨야 하는 상황. 당직자 3명이 CCTV화면을 계속 점검하길 기대할 수도 없다. 상왕십리역 관계자는 "현재 이 역의 모든 요원들이 제대해 추가 배치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이프 존에 설치된 비상전화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길이 없어 방치된 거나 마찬가지다. 회사원 진모(36)씨는 "비상전화라고만 적혀 있고 아무 설명이 없어 승객들이 다급한 상황에 사용할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세이프 존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시민도 많았다.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만난 고병욱(22ㆍ학생)씨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역을 다니며 녹색 칸은 보았지만 그것이 세이프 존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회사원 장혜진(27)씨는 "세이프 존이라기에 인터넷 보안프로그램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서울메트로는 한 달간 시범 운영한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100일이 지난 지금 아무 조치가 없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서울시와 협의해야 하는 문제이고 지하철 보안관과 여성전용칸 설치 등 다른 정책과 연계돼 있어 확대 시기가 불확실하다"며 "다른 역에도 추가 설치되면 홍보에 힘쓸 수 있을 것" 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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