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불가능의 시대/오늘의교육 편집위원회 기획·엮음/교육공동체벗 발행·306쪽·1만3,000원
학교의 풍경/조영선 지음/교양안 발행·328쪽·1만5,000원
국어교사 조영선씨는 첫 부임한 서울 목동의 중학교에서 3학년 수업 도중 두 아이가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아수라장을 겪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왜 자기 수업시간에 그렇게 떠드는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써내라고 했다. 그 중 두 명의 대답이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공부를 제법 한다는 한 아이는 이렇게 썼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에 갔다가 새벽 1시에 온다. 학원에서는 매일 시험을 보고 그 기준을 넘지 못하면 공부하거나 맞는다. 선생님에게는 미안하지만 국어 시간은 그나마 유일하게 떠들 수 있는 시간이다.' 목동 임대아파트에 사는, 수업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다른 아이는 '선생님은 좋은데 국어는 넘 어렵다'고 했다.
10년 전 이야기지만 사정은 지금 더 하면 더 했지 달라진 게 없다. 대학이나 고교 진학에 아등바등하던 건 옛말이다. 이제는 중학교, 초등학교 입학 경쟁까지 벌어진다. 학원에서 선행교육이라고 학교 수업 진도보다 한참 앞서 다 가르치니 교실에서 배울 게 없다. 학원 다닐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은 반대로 학교 수업이 어려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교육전문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가 엮은 <교육 불가능의 시대> 와 '삐딱한' 교사 조영선씨가 쓴 <학교의 풍경> 은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짚어본 책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들은 한국의 교육이 사실상 '교육 불가능'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학교의> 교육> 오늘의>
공부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학교를 힘든 학원 공부에서 벗어나 잠시 쉬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오후 5, 6교시 수업 때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엎드려 자거나 졸고 있다.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아예 배움 자체에 관심이 없다. 결국 학교에서 뭔가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시인 유하가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이라고 조소했듯, 지금 한국의 학교는 '의미 없는 공간'이 돼 버렸다는 데 저자들은 동의한다.
문제는 교육감이 진보로 바뀌어도 변함 없는 성적과 시험 위주의 교육시스템, 명문고, 명문대 입학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되는 사회 구조뿐만이 아니다. 이 같은 구도를 확대재생산하는 주역인 학교와 교사 자체다.
학생 두발 자유화, 체벌 금지 문제 등으로 좌충우돌해온 조영선 교사가 학생회 신문의 지도교사를 하던 때 일이다. 한 학생 기자가 교육부의 체벌 가이드라인을 기사로 다뤘다. 체벌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규정을 소개하겠다는 취지였다. 기사 제목이 '아프냐? 나도 아프다!'로 달렸다. 조 교사는 때리는 선생님의 마음도 아프다는 배려를 담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교사들은 정반대로 읽었다. 학생들이 교사를 향해 "아프냐? (맞는 내가)더 아프다"며 빈정거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제목은 그냥 '체벌 규정 안내'로 바뀌었다. 사제간의 극단적인 소통 불능이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 에 실린 '학교가 버린 아이들, 학교를 버린 아이들'은 한국 교육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학벌 없는 사회' 운영위원인 채효정씨가 조사 분석한 내용을 보면, 문제아로 낙인 찍혀 결국 학교를 떠난 뒤 그보다 몇 배는 더 살벌한 세상에 내팽개쳐진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어하는 지 알 수 있다. 그들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는 역시 학교와 교사이다. 교육>
입시 대비와 사실상 동의어이고, 출세를 위한 거의 유일한 지름길이며, 승자와 패자밖에 존재하지 않는 살벌한 경쟁만 남은 것이 지금 한국의 청소년 교육이다. 이 땅에서 교육은 점수 한 점 더 올리려고 누리고 즐겨야 할 많은 시간들을, 정말 배워야 할 숱한 것들을 모두 유보해야 하는 절대가치다. 부모들이 신앙처럼 그렇게 믿고 아이들도 그래야 하는 줄 안다. 하지만 그래서 돌아오는 건 해마다 늘어나는 청소년 자살률과 3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꼴찌인 청소년 행복지수다. 교육이 바뀌지 않고 도대체 이 나라에서 누가 무슨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책에 담긴 한국의 교육 현실이 안타깝고도 절망스럽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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