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무명인 채로 사라지는 연예인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한 매너지먼트사 관계자는 무명 연예인의 실태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연기나 가수지망생 풀(Pool)로 보면 실제 데뷔에 성공하는 이는 극소수이고 큰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얼굴이나 이름 알리기는 물론이고 데뷔조차도 어렵고 힘들다고 했다.
지난 8월 25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여자 연예인 한채원(31ㆍ본명 정재은)씨도 그런 경우였다. 당시 사건을 접수한 경찰 관계자조차 그가 연예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2002년 한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뒤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지상파 방송 드라마와 스크린에서 잠깐 자신의 이름을 알린 뒤 오랜 무명의 길을 걸었다. 화보촬영, 가수데뷔까지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했고 이름도 세 번이나 바꿨지만 결국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무대에서 사라졌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책했던 그는 사망 한 달이 지나서야 그 아픈 사연이 알려졌다.
매너지먼트사 관계자는 "한씨도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운이 닿지 않았는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좌절의 연속인 가운데서 절박한 심정이었던 한씨는 생전 연예계 주변 사람들한테 여러 차례 사기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한씨가 연이어 캐스팅에 실패한 뒤 몇몇 사람으로부터 특정 작품에 배역을 따 줄 테니 투자비를 가져오라는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안다. 심지어 8,000만원의 거액을 요구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스타가 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지만 그 '별'을 따는 이가 있기에 무명연예인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심리를 이용해 한 사람을 파멸로까지 몰아넣는 일이 연예계에선 종종 벌어진다. 가수나 탤런트 지망생에게 데뷔를 미끼로 벌이는 사기, 성폭행 등의 연예 매너지먼트 관련 범죄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김길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사무국장은 "매니저의 일은 작가나 PD를 만나서 담당 연예인이 어떤 작품을 할 것인지 고민한 뒤 이미지를 만드는 전문 영역"이라며 "최소 4~5년의 경력을 거쳐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 받은 사람만 등록할 수 있게 매니저 제도가 마련돼야 피해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상담심리 전문가는 "배우에서 가수로 진출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등의 행위는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탓"이라며 "지원자 중 극소수만 스타가 되는 현실을 감안, 차선의 길을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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