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75) 이탈리아 총리의 승부수가 또 통했다.
이탈리아 하원은 14일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제안한 정부 불신임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301표, 반대 316표로 부결시켰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자신과 관련한 성 추문과 부정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데다 11일 예산지출 승인안이 의회에서 부결되자 정국 타개책으로 불신임안 카드를 내놓았다. 불신임안이 부결됨으로써 베를루스코니는 총리로서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는 지난해에도 탈세와 성 추문 등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불신임안 표결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불신임안 부결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15일 로마에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할 계획이어서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진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불신임안이 부결된 데는 지지기반인 북부연맹과 자유국민당(PdL) 등 중도우파 집권 연정의 힘이 컸다. 그에 비해 좌파 세력은 결집력이 떨어지고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대체할 중량감 있는 인물이 없어 결국 그의 집권을 연장시켰다.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1994년 이후 세번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는 이날 표결에 앞서 "직면한 위기를 해결한다며 정부를 바꾸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바뀐 정권 역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며 정권 교체가 대안이 아님을 호소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위기를 넘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연정 붕괴는 시간 문제라는 게 정가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우선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지지기반인 중도우파 연정의 내부균열이 심각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북부연맹 지도자인 움베르토 보시의 '독선적 리더십' 때문에 총리의 지지기반이 와해됐다"고 전했다. 자유국민당의 실력자로 꼽히는 산토 베르사체 의원은 "경제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탈당한 뒤 "현 정권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며 반란을 시도했다.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정권이나 총리 선출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해 총리 퇴진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도 그의 퇴진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여줄 리더십이 없어 이탈리아의 경제위기 회복이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이탈리아의 경제위기는 채무상환능력보다는 유동성의 위기 때문"이라며 "대외 신뢰도를 높이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잠재력은 있는데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상황을 나쁘게 한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스피로 투자전략가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임하면 해외투자자들은 이탈리아의 투자가치를 호의적으로 재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2013년으로 예정된 총선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당겨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마리오 몬티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강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된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