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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다문화가정, 바둑으로 하나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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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다문화가정, 바둑으로 하나되다

입력
2011.10.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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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9일) 오전 충북 제천 청천동의 한 바둑교실. 30대 여성과 어린이 20여명이 대형 바둑판을 앞에 놓고 열심히 바둑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바둑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조금 색다른 점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이주 여성들과 그 자녀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혜림이 엄마 김영걸씨와 여섯 살 호연이 엄마 이소화씨는 중국인이고 초등학교 5학년 강병호군 엄마 낸시는 필리핀이 고향이다. 한국인 아빠 이철준씨는 중국인 엄마 대신 세 자녀와 함께 참석했다. 이밖에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방글라데시에서 온 엄마들도 있었다.

난생 처음 바둑돌을 잡아 보는 터라 손 모양은 어색해도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강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흑백 세계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다. "첫 달에는 바둑의 원리와 착수 규칙, 11월에 바둑 예절과 기본기술, 12월에 사활과 정석을 익혀서 실제 대국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르칠 계획입니다." 국내 바둑 교육계에 소문난 베테랑 바둑강사 임창순 원장은 '바둑판의 가로선과 세로선의 교차점에 서로 한 번씩 교대로 바둑돌을 놓는다'는 착수 규칙부터 바둑돌의 삶과 죽음, 집의 개념과 축 장문 패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사항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몇 번이나 확인을 거듭했다.

같은 날 오후 1시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이주여성연합회 사무실에서도 외국인 엄마와 어린이 20여명이 바둑판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강사는 요즘 군 장병을 대상으로 바둑 보급 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는 여자 프로 기사 이다혜 4단. 강의 도중 어린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바둑 퀴즈를 내고 정답을 맞히면 왕별 스티커를 붙여주는 등 재미있는 진행 방식 덕분에 이4단의 강의실은 항상 시끌벅적 활기가 넘친다.

"엄마와 아이들이 바둑을 함께 배우는 건 참 좋은 방식입니다. 안정감이 있으니까 교육 효과도 높아요. 보통 바둑을 처음 배우고 1년 정도까지는 어른들의 습득 속도가 빠르지만 그 후에는 어린이들이 금방 추월해요. 엄마와 아이가 함께 배우면 서로 보완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수업 말미에는 13줄 바둑판으로 실전 대국도 이뤄졌다.

한국기원이 전국 각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바둑 교실의 모습이다.

통계청이 작성한 2010년도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38만 6,977가구, 93만9,379명에 이른다. 매년 결혼하는 30만 쌍 중 10% 이상이 다문화 가정이며 이들의 자녀 수는 이미 10만 명을 넘었다. 특히 대부분이 초등학교 취학 연령대여서 사회 각 분야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바둑계에서도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참여하는 바둑교실 사업을 기획했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 체계를 담고 있는 바둑을 통해 다문화 가정의 문화 소통을 돕고 나아가 사회 통합의 밑거름이 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중국어 베트남어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필리핀어 등 6개국 언어로 된 바둑 교재(한국어 병기)도 보급한다.

제천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나정흠 사무국장은 "집에서 TV와 컴퓨터게임으로 소일하는 자녀들에 대한 고민은 다문화 가정의 부모님들이라고 다르지 않다"면서 "특히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주여성들에게 바둑 교육은 아주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왕지연 이주여성연합회 회장도 "저희 단체 회원의 자녀가 학교 특활 시간에 바둑을 배우며 친구들과 더욱 친해진 사례가 있다"며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가 또래 아이들이 잘 모르는 바둑을 잘 둔다면 자신감이 확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원의 다문화 가정 바둑교실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지원을 받아 올 하반기부터 서울과 제천을 비롯, 인천과 전남 순천 등지에서 먼저 시작됐다. 각 지역 다문화가정지원센터나 사회단체에서 바둑교실 개설을 요청하면 바둑 교재와 용품을 지원하고 전담 강사도 파견한다. 10월 말까지 신청을 받는다. 문의 한국기원 보급기획팀 (02)3407-3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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