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1945년 이후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리스의 위기가 이탈리아로 옮겨갈 경우 전후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이제서야 문제를 뒤로 미루는 전략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하다. 이 상황을 단번에 타개할 만한 극적인 해결책은 없다. 다 함께 힘을 모아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여전히 유럽은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바로 성장의 부재다.
유럽의 경제위기를 타개하는데 독일이 중추적으로 나선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프랑스는 유럽 내 독일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단일통화를 고안하고 추진했지만 정작 경제현실은 기구나 조직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다. 유럽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독일은 건전한 재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수표를 발행하고 채무 보증을 설 수 있는 국가는 독일이 유일하다.
독일도 구세주 역할 못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본드 같은 파격적 해법(사실상 유로존 국가들의 모든 부채에 독일이 보증을 서는)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비난받아 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결은 그리스, 스페인 등이 다시 독일에게 손을 벌리는 결과를 부를 뿐이다. 이 국가들은 굳이 예산삭감이나 경제개혁을 단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몇 주 전 독일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체를 드러냈다. 이탈리아의 부채가 늘어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개입해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였다. 이는 이탈리아가 부담해야 할 금리를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상황이 안정되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약속했던 경제 개혁에서 슬금슬금 손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이 불안한 유로존 국가들은 당장 기댈 곳이 있다는 이유로 구조조정 같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독일은 상황이 이렇게 끝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문제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유럽이 처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일부 국가들이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빚을 유럽의 주요 은행들이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회계장부에서 악성부채의 규모를 확인할 때 은행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은행들은 대출금을 상쇄하기 위해 자본확충에 나설 수 밖에 없다. 그리스의 경우 어느 정도 채무불이행(디폴트)은 불가피하지만,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로존 국가들의 부채를 부분적으로 보장하는 채권 보험이 거론될 수 있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무거운 채무의 짐을 지고 있는 국가가 불구가 되지 않게 하면서 압박할 수 있는 방안이다.
경쟁력 회복만이 궁극적 해법
궁극적으로 유럽의 위기는 성장의 위기이다. 문제는 그리스가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유럽의 위기는 훨씬 많다. 그리스의 예산 문제는 너무나 암울하다. 성장 전망이 암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력이라는 훨씬 더 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본을 끌어들이고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그리스 경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유럽 국가 전체에 해당된다. 이탈리아 경제는 거의 10년 동안 정체상태였다. 향후 10년 동안도 정체가 계속된다면 부채 재조정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평균 성장률이 1.5% 밖에 되지 않는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인구가 매년 감소하기 때문에 독일 정부는 향후 5~7년 동안은 1% 이상의 성장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유럽의 엔진 역할을 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유럽이 정말 곤경에서 빠져 나오려면 위기 의제를 넘어선 성장 의제가 있어야 한다. 이는 급진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 서구경제는 높은 임금, 중산층과 정치권의 관대한 보조금, 복잡한 규제와 세금으로 꽁꽁 묶여 있다. 서방은 3가지 분야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인구변동(고령화), 기술개발(기업은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세계화(제조ㆍ서비스를 전세계로 확장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다. 유럽과 미국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폭풍에서 벗어나 또 다른 폭풍으로 들어가는 꼴이 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뉴스워크 칼럼니스트
정리=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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