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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대학 캠퍼스에도 텃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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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대학 캠퍼스에도 텃밭이 있었다

입력
2011.10.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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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변 거름이 좋다니까. 일주일 만에 또 한 뼘이나 자랐잖아."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의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 옆 공터. 친구들은 2학기 중간고사 준비로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할 때 황윤지(24ㆍ한국외대4), 최영인(23ㆍ연세대3), 황정심(25ㆍ취업준비)씨는 배추 30포기가 심어진 밭에 모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 소변을 발효해 만든 액체비료를 토양에 뿌려줬더니 배추가 몰라볼 정도로 크게 자란 것. 이제 속이 노랗게 차오르는 일만 남았다. 이들은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는 게 정말 신기하다"며 "다음 달 말 수확해 김장할 생각을 하니 벌써 신난다"고 말했다.

토익 고득점, 어학연수, 인턴 등 좋은 직장을 위한 스펙 관리 대신 캠퍼스에 텃밭을 일궈 농사짓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생 40여명으로 구성된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씨앗들)'은 연세대를 비롯 고려대, 한국외대, 이화여대 등에서 배추, 무, 쪽파, 얼갈이 등을 재배하고 있다.

씨앗들이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고려대에서부터다. 군 전역 후 복학한 곽봉석(25ㆍ고려대4)씨가 '도시 농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학교에서 농사를 지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도시에서 자라나 농촌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던 친구들과 채식, 식량ㆍ환경 문제 등에 관심 있는 타교 학생 등 7명이 모인 것이 시초다. 이들은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문 옆 공터(33.3㎡)에 당근, 상추, 배추, 무 등 채소를 파종했다.

그러나 호미를 생전 처음 만져 본 '서울 촌놈들'이 농사짓는 법을 알 리 없었다. 귀농 및 농민단체에 도움을 청하고, 농촌사회학을 전공한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의 강의도 들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에 뽑혀 지원금도 받았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9월과 올 여름 폭우에 배추가 쓸려 내려갔고, 애써 키운 배추와 무를 고양이나 비둘기가 갉아 먹거나, 누군가가 몰래 뽑아가기도 했다. 학생들이 밭인 줄 모르고 작물을 밟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씨앗들은 수확한 배추(40포기)로 첫 김장을 담근 지난해 11월 24일을 잊지 못한다. 이들은 "김치가 정말 꿀맛이었다"며 "남들은 '뭣 하러 농사짓냐'고 하지만 수확의 기쁨과 보람, 농사의 중요성, 느리게 사는 삶도 배웠다"고 말했다.

씨앗들은 '레알텃밭학교'강좌를 만들어 농사를 전파하고 있다.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난해 2학기 고려대에서 시작된 이 강좌는 김철규 교수와 농업 전문가들의 강의 및 실습으로 구성된다. 첫 강좌에 60명이 참여하며 큰 호응을 얻자, 올해 이화여대(1학기), 연세대(2학기)에도 개설됐다. 황윤지씨는 한 출판사의 제의로 좌충우돌 농사 경험담과 도시농업을 소개하는 이란 책을 지난달 출간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학에 농사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씨앗들은 11월 중순 각 학교에서 재배하는 배추(약 100포기)를 수확해 연세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김장을 담그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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