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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의 헬로] 양태현 화살장인 "한국인은 활의 민족…'애기살'로 명량해전도 이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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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의 헬로] 양태현 화살장인 "한국인은 활의 민족…'애기살'로 명량해전도 이겼지"

입력
2011.10.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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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에게 끌려간 유일한 피붙이 누이를 찾아 나선 불세출의 조선 신궁 남이(박해일 분). 파란만장 역경을 딛고 누이를 구해 조선 국경 근처로 온 그는 아무리 몸이 만신창이에 누더기가 돼도 좀비처럼 자신을 추격하는 청나라 장군 쥬신타(류승룡 분)와 운명처럼 마주선다. 엎치락뒤치락 반전의 반전 끝에 마주선 쥬신타와 남이의 한가운데 누이가 서게 되고, 쥬신타는 육중한 화살 육량시(六兩矢)를 누이에게 겨눈다. 남이도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달린 살상용 화살인 세전(細箭)을 드르륵 당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남이의 화살이 핑 하는 소리와 함께 시위에서 튕겨진다. 누이의 죽음도 불사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게 웬걸. 화살은 옆으로 휙 원을 그리며 휘더니 누이를 피해 쥬신타의 몸에 쿡 박힌다. 평소 갈고 닦은 곡사(曲射)였다. 지난 8월 개봉돼 구름 관중을 불러모은 영화 '최종 병기 활'(감독 김한민)의 피날레다.

이 영화에 쓰인 화살을 모두 만들어 주고 치명적 병기 활의 사용 방법에 대해 조언해 준 사람은 장애인 시장(矢匠ㆍ화살 장인) 양태현(61)씨. 평생 화살만 만들어 온 양씨로부터 화살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_ '최종 병기 활'에 나온 육량시와 세전을 설명해 달라.

"육량시는 무게가 여섯 냥짜리 화살이야. 1냥이 37.5g이니까 225g 나가는 거지. 이 화살은 엄청 강해. 무게가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 무거운 게 흠이었어. 조선 때 무과 시험에서 힘이 있는 몇몇만 이걸로 제 거리를 보내고 대부분이 제대로 쏘지 못하자 석 냥짜리 화살인 삼량시(三兩矢)로 바꿨어. 무게가 절반이지. 그 뒤론 무과 시험뿐 아니라 전투나 연습 때도 주로 이 화살을 썼지. 그러니까 지금은 육량시라고 하지 않는 모든 화살이 삼량시인 셈이야. 세전은 화살촉이 날카롭게 만들어졌다고 붙여진 이름이야. 쇠로 창끝처럼 만들어. 전투 때 살상용으로 쓰이고 수렵에도 주로 이 화살을 썼어."

_ 영화에 나오는 다른 화살도 많던데.

"효시(嚆矢)는 전쟁을 시작할 때 쏘는 소리 나는 화살이지. 화살에 피리 같이 생긴 기구를 달아 바람이 통과할 때 소리가 나게 하는 거지. 그래서 뭔 일의 맨 처음을 효시라고 하는 거야. 박두전(樸頭箭)도 나오는데 이건 끝이 평평하게 돼 있어 위험하지 않아 주로 수련용으로 많이 썼어. 특히 문과에 급제한 사람들 가운데 어사로 가는 사람은 이 화살로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했다고 해. 어사니까 기본 무술은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 무촉전(無鏃箭)은 기절시켜 생포하는 화살이야. 끝을 솜이나 무명 헝겊으로 쌌어."

_ 유엽전(柳葉箭)과 마전(馬箭)도 등장하는데.

"유엽전은 화살의 촉이 말 그대로 버드나무 잎처럼 생겨 치명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조선 중기 이후 무과 시험 치를 때 쐈어. 요즘은 각종 국궁 대회 때 이걸 주로 사용하지. 나는 여기에 총알 탄피를 단 유엽전을 대중용으로 싸게 만들고 있지. 마전은 말을 타고 쏘는 화살이야. 기마 상태에서 발사가 용이하게 길이가 다른 화살의 80~85㎝보다 짧은 60㎝지."

_ 애기살이란 무엇인가.

"영화에서 애기살로 나오는데 편전(片箭)이 맞는 말이야. 오랑캐가 '뭐 저런 짧은 화살로 우리와 싸우려 하냐'며 편전을 애기살로 하찮게 부르다 된통 당하는 장면이 있잖아. 이건 실제로도 그랬다네. 화살은 그 특성상 적진에 날아간 뒤 그들의 활에 장착돼 아군의 심장으로 날아들 수도 있어. 화살의 숙명이지. 하지만 편전의 길이는 45㎝. 짧아서 다시 쏠 수 없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 화살인 셈이야. 편전을 쏠 때는 덧살이라고 부르는 대나무 살에 덧대서 일반 활로 쏘게 돼 있어. 화살은 작고 덧살을 이용해 똑 같은 힘을 받기 때문에 더 멀리 날아가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승리에서도 편전이 큰 힘을 발휘했어."

_ 영화에 사용된 또 다른 화살은.

"신기전(神機箭)도 갖다 썼지. 화약을 달아 발사하는 다연발 화살로 로켓 같은 거야. 또 투호(投壺) 놀이 때 사용하는 화살도 만들어 줬고. 영화에서 엑스트라가 쓰는 화살 역시 내가 만들었는데 보통 화살은 깃이 3개지만 이건 2개짜리를 달라고 해서 줬지. 제작비 아끼려던 건데 그래도 뭐 멋있게 나왔더만."(웃음)

_ 영화에서 주인공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화살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가능한 일인가.

"화살이라는 게 엄청 정교한 무기야. 균형도 맞아야 하고 매끈해야 하고. 그런데 す뎔≠?잘라 쏘면 당연히 안 나가지."

_ 화살이 빙 돌아서 날아가는 곡사는.

"곡사는 원래 가능해. 팔을 비틀면서 쏘면 화살이 돌잖아. 그렇게 되면 돌아 맞지. 야구의 커브볼과 같은 원리야. 그렇지만 힘이 좋아야 해. 비틀면서 버터야 하니까. 많지는 않지만 요즘 궁사들 중에서도 이렇게 하는 사람 가끔씩 봐."

_ 영화 제작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내가 원래 영화하고 드라마를 많이 같이했어. 이순신 장군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2004년 KBS1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1971년 영화 '성웅 이순신' 등에서 화살을 만들었지. 그래서 영화인이나 방송인 중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 이번에도 그냥 찾아왔더라고."

_ 영화에서 보여 준 것 말고도 만들어 내는 화살이 많은가.

"이번에 만들어 준 게 엑스트라용 빼고 9종인데, 내가 만드는 화살 16종의 반 조금 넘지. 그리고 이번에 쓴 게 400개인데 현재까지 내 손을 거친 화살은 20만개는 넘을 거야."

_ 영화를 보면 화살의 위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한 국궁 대회에서 참가자가 실수로 화살을 맞은 적이 있었어. 유엽전이었는데 머리를 관통했어. 치명적 무기야."

_ 한국 화살이 다른 나라에 비해 몇 수 위라는데.

"영화에서처럼 중국은 화살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한참 아래였어. 뒷산의 나뭇가지 꺾어 다듬는 수준이니까. 일본은 겉모습은 그냥 흉내를 내는데 쏴 보면 영 아니고. 옛날에 그들이 한국의 활 명인들을 그토록 빼내려 했던 게 다 그 때문이지."

_ 그렇게 뛰어난 이유는.

"한국에서 활은 세도 좀 있다는 사람들이 주로 했어. 그래서 재료를 엄청 비싸고 진귀한 걸 사용했지. 장인도 최고만 썼고.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물량과 기술을 투입했으니 당연히 화살도 최고일 수밖에 없었지."

_ 우리는 예로부터 활을 중시했던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 오죽 활을 좋아했으면 활 잘 쏠 이(夷) 자를 써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라 불렀겠어. 무과 시험에도 활 쏘기는 필수였고 옛날 선비들 역시 심신 단련과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활을 쐈어. 활을 중히 여기다 보니 관련 도구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지."

_ 그런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나.

"지금 열리고 있는 청주공예비엔날레(30일까지)에 내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화살에 관심 안 보이는 아이들 못 봤어. 게다가 돌잡이로 화살 6개를 항상 내놓지. 아이들이 화살 집으면 어른들은 '장군 되겠다'며 기분 좋아하지. 또 아이들이 즐겨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활과 화살이 빠지는 것 보기도 힘들어."

_ 한국 양궁이 강한 것도 이런 혼과 관련이 있나.

"당연하지. 활 민족이 양궁이건 국궁이건, 활을 못 쏜다면 그건 죄악이야. 전통에 대한 배반이지."

_ 화살 만드는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했어. 그 탓에 초등학교도 남보다 늦게 들어가 졸업했어. 집안 형편도 안 좋았고. 불편한 몸으로라도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어. 그런데 16세 때 당시 전남 구례에서 화살 장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모부(조기선)가 전주 우리 집으로 찾아온 것이 전환점이었어. 이모부는 내가 연을 멋지게 만들어 높이 날리는 걸 보고는 '손재주가 있다. 다리가 불편하지만 화살을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며 일을 권했어. 그래서 그 길로 따라나섰지."

_ 처음부터 일에 확신이 있었나.

"어느 날 이모부가 화살을 팔고 돈을 받는데 그게 완전 충격이었어. 화살 한 죽(10개)을 주고 받은 돈으로 쌀 한 가마와 쇠고기 두 근을 사더라고. 당시 머슴살이 새경이 쌀 8가마였으니까 엄청난 거지. 그래서 이 일만 잘하면 풍족하지는 않겠지만 먹고는 살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았어."

_ 배우는 데 어렵지는 않았나.

"사실 처음에는 나뭇가지나 꺾어서 만드는 것이 화살이라 여겼어. 나중에 화살 하나를 만드는 데 엄청난 수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지. 하지만 일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그 수고가 수고가 아니었어. 화살 하나를 전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재료만 부분부분 만들면 되니 그다지 어려울 건 없었어. 그런데 나중에 이모부가 '신동'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다른 사람은 그렇게 쉽게 못한다고. 일을 배우는 동안 구박보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지."

_ 이모부가 가장 강조했던 대목은.

"'손해를 봐야 한다. 눈앞의 이익만 보려 하면 꾸준하지 못하다'는 말씀이었지. 이건 내 신조이기도 해. 화살을 팔면 꼭 2, 3개를 덤으로 주지."

_ 독립은 언제 어떻게 했나.

"11년쯤 일했는데 하루는 이모부가 '이제는 독립해서 혼자 화살을 만들어 봐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화살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 1년치를 모두 줬어. 그래서 당시 활 장인이 없는 강원도 원주로 가서 일을 시작했어."

_ 독립하고 쉽게 자리를 잡았나.

"원주에서 5년간 있으면서 많은 돈은 벌지 못했지만 집도 한 칸 마련했어. 그런데 전통 활을 쏘는 지인인 방송계 인사가 '내가 있는 쪽으로 오면 도와주겠다'고 해서 1982년 지금의 충북 청주 작업장으로 옮겼지."

_ 청주로 온 뒤에는 어땠나.

"당시 충북 도내 궁도장은 청주 3ㆍ1공원 옆 우암정이 유일했어. 이 때문에 궁사들이 타 지역의 궁도장을 찾았지. 그 지인과 손을 잡고 국궁을 알리기 시작했어. 덕분에 시군마다 1, 2개씩 국궁장이 들어섰고, 화살도 많이 팔렸어. 한 건설사 사장은 동호인들이 쓰는 화살 값을 대신 치러 주기도 했고. 국궁 보급 공로로 2006년에는 도 무형문화재 16호로 지정받았어."

_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갑자기 일감이 줄었다는데.

"우리나라는 올림픽 하고 나서 살림이 폈지만 나는 그 이후 죽을 고비를 맞았어. 올림픽 후 카본이나 나일론으로 만든 화살이 나왔는데 대한궁도협회가 명궁 칭호를 얻게 되는 5단부터만 대회에서 전통 대나무 화살을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는 이걸 쓰게 했어. 당시 생활체육 붐을 타고 활을 쏘는 사람은 과거보다 30배 정도 늘어나 50여만명이 됐어도 전통 죽시를 쓰는 사람은 400여명뿐이었어. 지금도 비슷하고. 그리고 나머지 수요는 영화사나 방송사, 장식용 화살인데 그 수효가 원래 얼마 안 돼."

_ 실제 판매량은 얼마나 감소했나.

"한때 매달 750개 이상을 만들던 게 150개 안팎으로 줄었어. 계속 회복이 안 돼. 살림살이가 어려움에 빠졌고 끝내 이혼하면서 가정도 쪼개졌어."

_ 재혼은 했나.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여건이 조금 나아져서 했지. 화살 깃은 작은 가위로 잘라야 하는데 남자 손으론 못해. 아내가 다 해주지."

_ 영화가 인기를 끈 덕에 화살이 많이 나가지 않나.

"장식용 화살 몇 개 판 게 고작이야."

_ 전통 화살 보급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국궁협회가 반드시 죽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국궁을 하지 않으려 할 거야. 그러니 출구가 없지."

_ 후원을 기대할 수는 없나.

"한 기업이 돕겠다고 하는 얘기를 전해 듣기는 했는데 직접 들은 게 아니라 모르겠어."

_ 현재 화살 장인은 몇 명이나 있나.

"내가 입문할 때 22명이었는데 이제는 전국에 6명뿐이야. 기본적으로 유지가 안 되니까."

_ 위기에 처한 화살 장인의 맥을 이어 나가야 할 텐데 가능할까.

"아들(32)이 군대 제대하고 내 일을 돕겠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4년 만에 내가 그만두게 했어. 길이 안 보여서. 그리고 문하생이라고 하나 찾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사흘 만에 나간 뒤 아직 소식이 없어."(그는 이 대목에서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_ 화살 장인으로서 현재의 심경을 말한다면.

"사실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내 화살 찾는 사람들 때문에 안 죽고 살아. 하나에 2만5,000~3만원 하는 가격이 만만한 건 아닌데 아직도 내 손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행운이지."

■ 전통 화살 어떻게 만드나

양태현씨는 화살을 만들기 전 재료부터 남다른 것을 선택한다. 우선 화살대가 되는 대나무는 강원도 양양과 고성 지역의 시누대(해장죽)를 쓴다. 해풍을 맞고 자란 시누대는 밀도가 높아 단단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도 대나무가 있지만 재질이 성겨서 쓰지 못한다. 시누대도 그냥 사용하는 게 아니라 6개월 이상 그늘에 말린다. 화살에 다는 깃은 제주 꿩의 날개털을 사용한다.

실제 화살 제조는 말린 시누대를 정해진 크기로 잘라 일일이 무게를 측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마다 원하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을 여러 번 불로 구운 뒤 줄질과 사포질을 반복한다. 깃이 붙는 부분은 민어 부레로 만든 풀로 쇠심줄을 말고, 시위를 거는 홈을 판 둥근 모양의 오늬를 끼운다. 3개의 깃은 가장 나중에 붙인다.

양씨는 "화살 하나를 만드는 데 큰 손만 84번이 들어가고, 작은 손까지 합하면 수백 번의 공이 들어야 한다"며 "이것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화살은 여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고 했다.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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