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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나눔에 인색한 한국, 경제 세계 13위, 기부지수 81위… "기부자 존경 풍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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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나눔에 인색한 한국, 경제 세계 13위, 기부지수 81위… "기부자 존경 풍토부터"

입력
2011.10.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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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이라는 글에서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스럽다"며 기업인들의 재산 기부를 강요했다. 그는 "재산의 세습은 자식들은 물론 사회에도 해악을 끼친다. 상속세는 가장 현명한 형태의 세금으로 무거울수록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거액을 기부해 화제가 된 김병호ㆍ김삼열씨 부부는 "돈을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반면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기부를 받았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이 문제로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

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경률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사회지도층이 재산의 5%를 기부, 40조~50조원 규모의 '공생발전 선진화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것이 새삼 흥미롭다. 거의 실천불가능한 일이라 그런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가 그만큼 소득양극화, 빈부격차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15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1%에 맞서는 99%, 분노하라 99% 광장을 점령하다'라는 슬로건으로 시민단체들이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외신에서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덕택에 인도에서만 10만명에 대한 에이즈 감염을 막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2003년 인도의 안드라프라데시와 카르나타카 등 6개 주에서 게이츠 재단의 지원 아래 시작된 아바한 운동 덕분이란다. 기부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바한 운동은 게이츠 재단이 지원한 2억5,800만 달러의 자금을 이용해 5년간 성 상담, 무료 콘돔 배포, 사용된 주삿바늘의 멸균소독 등을 하는 다양한 에이즈 예방 사업이다.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해 거부가 됐던 알프레드 노벨도 기부의 원조 격이다. 그는 엄청난 유산을 기부해 노벨상을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노벨이 다이너마이트가 무기로 사용되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재산을 기부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최대 기부자에 속하는 앤드류 카네기나 록펠러도 처음에는'강도 귀족(robber baron)'으로 분류됐다. 경쟁자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노동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한 부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이후 많은 기부를 통해 속죄 혹은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의 이미지는 어떨까. 많은 부를 불법적으로 축적하고, 탈세하고, 불법 증여하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인색한 자의 이미지다. 반면 카네기, 록펠러,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은 기부를 통해 미국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지만 우리는 세금을 많이 내면 바보 취급을 당한다. 미국은 개척시대부터 많은 돈을 벌어 세금을 많이 내면 그 마을 혹은 공동체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존경을 받았다. 반면 오랜 기간 세금 문제로 국가의 횡포에 시달렸던 우리의 경우 '세금은 무조건 안 내고 보자'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세금도 국가 단위에서 보면 일종의 나눔 행위에 속한다. 세금과 기부가 다른 점은 자발성의 문제다.

정부 차원에서는 세금으로, 시민사회에서는 기부를 통해 사회의 불균형을 수정한다. 국가는 제도의 설계, 운영과 기반 조성을 담당하고, 기업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사회 공헌을 통해, 시민사회는 모금과 기부 등을 통해 부의 효율적 배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우리나라에도 기부 문화가 확산되는 추세다. 가수 김장훈과 하춘화 등이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록을 갖고 있고, 야채장사를 하던 임윤덕 할머니, 젓갈장사를 하던 류양선 할머니, 바느질해 모은 돈을 기부한 김숙일 할머니 등이 대표적 기부천사들이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등도 수천억원의 돈을 기부했으나 총수들의 사면에 대한 속죄의 형식이라 사회적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하다. 과거 존재했던 두레, 품앗이 등의 풍속도 일종의 나눔 행위다. 요즘 들어서는 프로보노(pro bono) 활동도 유행이다. 일종의 재능기부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무보수로 변론이나 자문을 해 주는 등의 봉사활동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부 문화는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척박하다. 영국의 자선구호재단(CAF)과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각국 19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0년도 세계 기부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81위(조사대상 153개국)에 불과했다. 기부 금액도 GDP의 1%에도 못 미친다.

한국 사회에는 1조원대의 재산을 가진 디제라티 (digerati)라는 신흥 부유층까지 출범했다. 디제라티는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literati)의 합성어로, 정보기술과 결합된 지식과 정보를 이용해 과거 산업자본에 비해 매우 빠른 기간 내에 상당한 부를 축척한 사람들을 말하는 신조어다. 반면 양극화로 인해 2080(20대 80), 혹은 1대 99 사회로 이행되면서 빈곤층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 기부문화의 활성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기부는 개인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를 좀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행위"라고 말한다. 기부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법적ㆍ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존경 받는 사회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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