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미 법무부가 범인으로 지목한 이란계 미국인 만수르 알밥시아르(56)의 행적이 미국 수도 한복판에서 암살을 기획한 테러범치곤 너무 허술한데다, 배후로 알려진 이란 정보기구의 공작 과정도 그간의 패턴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3일 "암살 모의 과정이 용의주도함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란 정예부대 쿠드스(Quds)의 방식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이란 정부 일각에서 이번 계략을 주도했다"며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쿠드스를 직접 거론했다. 하지만 쿠드스는 해외 공작을 할 때 레바논 헤즈볼라나 이라크 시아파 무장단체 등 대리인을 내세울 뿐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가령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 미 대사관 폭탄테러, 96년 사우디 코바르타워 공격 등 쿠드스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이 다수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수십년간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쿠드스가 갑자기 전문성이 한참 떨어지는 미국인과 멕시코 갱단을 선택할 리 없다는 얘기다.
이란 정부가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두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정도 테러면 이란은 미국, 사우디와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우선 통치원칙은 체제 안정성에 있다. 핵개발 프로그램 속도를 조절하는 등 국제적 고립을 면하기 위해 유엔의 눈치를 보는 처지다. 가디언은 "최근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 문제로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삐걱거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란이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알밥시아르의 개인적 자질 역시 그가 고도의 보안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테러 중재자가 되기에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알밥시아르는 치밀한 킬러라기 보다 덜렁대는 기회주의자에 가깝다"고 평했다.
그는 유년 시절 미국으로 건너와 텍사스주에서만 30년 넘게 살았다. 텍사스 A&M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중고차 판매, 아이스크림ㆍ샌드위치 장사 등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며 상당한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시절 패싸움에 연루돼 뺨에 흉터를 얻었고 87년에는 이혼한 첫 부인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법원 명령을 받는 등 폭력 성향도 강하다. 주변인들은 알 밥시아르에 대해 "허점투성이 인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대학 친구는 "그는 양말을 늘 짝짝이로 신고 다니고 열쇠나 휴대폰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다른 지인은 "알밥시아르는 이란에 머물면서 전화로 '곧 큰 돈을 만지게 될 것'이라고 떠벌리곤 했다"며 "그는 종교나 정치적 신념 따위는 없고 오로지 돈을 버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고 혹평했다.
여러 의혹에 불구, 미 정부는 외교수단을 동원해 이란을 압박한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미 국방부는 12일 "이번 사건에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고 외교적 해법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한편, 전 세계 모든 공관에 기밀전문을 보내 주재국 정부에 사건 경과를 설명하도록 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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