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절차를 모두 마무리함으로써 이제 공은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양국 정부가 기대하는 내년 1월 1일 한미 FTA 발효를 위해 한국에서의 국회 비준 절차만 남겨놓은 셈이다.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의 주요 내용을 놓고 마지막 열쇠를 쥔 여야 정치권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어 비준안 처리를 낙관하긴 아직 이르다.
정치권은 합의 도출을 위해 6월부터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 민주당이 제시한 '한미 FTA 재재협상안(10+2)'과 농ㆍ어민 추가 피해대책 등을 논의해왔지만, 여전히 절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준안 처리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핵심 쟁점들을 살펴본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위해 역외가공조항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발효된 한ㆍ싱가포르와 한ㆍ유럽연합(EU) FTA 등에선 개성공단 제조상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한미 FTA는 이를 예외로 하고 있다.
즉, 협정문은 한미 FTA 발효 1년 후 양국이 '한반도역외가공위원회'를 소집해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특혜관세 혜택 부여 조건과 기준을 협의토록 규정했다. 따라서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최소 1년 간은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셈이다. 그 사이 개성공단 제품이 FTA 관세인하 혜택을 받으려면 따로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현실적으로 협정문 내용을 수정하기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신 미국 측에 '남북 경제협력 진행 상황을 봐가며 추가 논의하자'는 요지를 담은 서한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가 한국산 인정 방법과 범위 등 민주당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지 검토한 뒤 다시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중소상인 보호법안 무력화
중소상공인 단체와 야권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기 위한 유통법과 상생법이 무력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한미 FTA 협정문에 중소상인 보호의무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GATS)과 다른 FTA도 개정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한미 FTA 협정문만 수정해봤자 실익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중소 상공인과 식당업주들이 대규모 결의대회를 예고하는 등 보완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어 민심에 민감한 정치권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기업의 정부 상대 소송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한미 FTA 협정문에 규정된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를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하며 폐기 또는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ISD는 기업이 상대 국가에 투자했다가 정부 규제로 피해를 입은 경우 상대 정부에 피해보상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한 제도. 미국 투자자의 제소로 자칫 우리의 공공정책 수행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야권의 우려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제도가 한미 FTA뿐만 아니라 국제협정에서 이미 일반화된 제도고,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ISD에 대해서도 야권 등의 우려를 미국에 서한으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큰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남용
자동차 세이프가드 발동요건 강화에 대해서도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 야권에선 미국과의 재협상 과정에서 도입된 세이프가드(특정품목의 관세 인하ㆍ철폐로 해당 산업에 심각한 피해 입을 경우 관세를 원래대로 회복하는 조치)를 미국이 남용할 경우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조항이 양측에 모두 적용되고, 발동요건도 한ㆍEU FTA와 동일한 만큼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통상절차법 및 무역조정지원제도 논란
일부 쟁점에선 진전도 있지만, 합의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국민과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FTA 협상 과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국회가 협상 및 보완대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는 '통상절차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정부도 이에 대해선 긍정적 반응이지만, 협상전략이 노출될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어서 구체적인 절차를 놓곤 입장이 엇갈린다.
FTA로 인해 6개월 간 기업 매출이나 생산량이 전년 동기대비 20% 이상 감소하면 융자나 컨설팅을 해주는 무역조정지원제도의 수혜 확대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이뤄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매출액 기준 추가 인하(민주당)와 컨설팅 강화(정부) 등으로 여전히 의견 충돌을 보이고 있다.
농ㆍ어가 추가 보호대책 마련
야권은 최근 농어가 보호대책을 추가로 제시했다. 밭작물과 수산물〉?직불금제도 도입, 감귤경쟁력강화기금 설치, 축산농가를 위한 가축사료 무관세, 축산소득 비과세, 축산업발전기금 5조원 조성 등 무려 13가지나 된다. 정부는 수용 가능한 요구와 아닌 것을 구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밭작물ㆍ수산물 직불금제도는 2013년부터 시행을 검토 중인 농가소득안정직불금제 등과 연계될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대책들은 예산 및 제도가 뒷받침 돼야 하는 만큼 수용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