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그제 탈세 혐의 등으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그의 탈세 정황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본인 및 가족의 국내 실거주 정황, 국내 건강보험 적용 기록 등으로 볼 때 비거주자 면세에 관한 그의 주장에 타당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비견될 정도인 권 회장의 국제적 비중, 2,200억원대에 이르는 탈세 규모, 초호화 변호인단, 검찰ㆍ국세청의 결연한 의지 등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공방을 지켜보는 입장은 여러모로 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소득세법 등에 따르면 2과세기간(2년)에 걸쳐 국내에 거소(居所)를 둔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 면세 대상인 비거주자가 된다. 그런데 이 법 시행령은 거소에 관해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및 국내에 소재하는 자산의 유무 등 생활관계의 객관적 사실에 따라 판정한다'는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검찰은 권 회장이 주소지라는 홍콩에서 2006년엔 이틀밖에 살지 않은 점, 2006~2009년 연간 135~194일을 국내에 머무른 점, 부인의 거주일과 호텔 등 국내 보유 자산을 들어 한국이 실 생활터전이자 과세지임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700여 회에 이르는 권 회장 가족의 국내 건강보험 적용 진료 사실을 덧붙이고 있다.
반면 권 회장은 2년을 합산할 경우 국내 거주 1년 이상인 적이 없었다며 비거주자 요건 충족을 자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근검절약, 통상 조세피난처를 활용하는 해운회사의 경영관례, 4조원대에 이르는 선박 주문을 통한 국내 조선산업 기여도 등을 감안해 범죄자 취급은 지나치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위법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하지만 정작 안타까운 건 존경 받아 마땅한 뛰어난 기업인이 탈세를 겨냥한 정황이 짙은 행적으로 스스로 명예를 훼손한 점이다. 국내 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거론되지만, 그렇게 따지면 국내 대부분의 재벌 회장 일가 역시 소득세를 낼 이유가 없어진다. 사회 지도층에게 납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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