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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치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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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치와 말

입력
2011.10.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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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말의 예술'이라고 한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하는 정치 본연의 임무를 일컬을 때 흔히 쓴다.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도 대화와 토론 기술에 의지했다. 숫제 그걸 학문의 기초로 삼았다. 그때 이미 말과 논리의 옳고 그름, 우열(優劣) 다툼은 때로 목숨을 거는 정치 투쟁이었다. 공맹(孔孟) 등 동양의 옛 선현들이'知言(지언)'을 중요하게 여긴 것도 무관치 않다. 이때 '말을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인격과 도의를 올바로 헤아리는 것을 뜻했다.

■ 제법 유식한 척 말머리를 꺼낸 것은 정치인의 말에 관한 영국신문 가디언의 칼럼을 흥미롭게 읽어서다. 요즘 영국 정계와 언론은 리엄 폭스 국방장관의'친구 스캔들'로 시끄럽다. 그는 군수업계 로비스트 비슷한 친구를 중동 등 외국 방문 때 공식 수행원처럼 데리고 다녀 말썽이 났다. 이 친구는 장관 자문역 행세를 하며 외국기업 관계자들을 만났고, 폭스 장관은 그런 자리에 얼굴을 비쳐 친구를 도운 의심을 받고 있다. 내각윤리강령 위반으로 사임 압력에 몰린 폭스 장관은 9일 사과 성명을 내놓았다. 가디언 칼럼은 이게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둔사(遁辭)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폭스 장관은 성명에서 "공적 책무와 사적 친분의 구분이 흐려지도록 허용한 것은 실수임을 수용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디언 칼럼은"전쟁의 첫 희생자가 진실이듯, 스캔들의 첫 희생자는 말"이라고 썼다. 폭스 장관은 모호한 수동태 화법으로 자신의 책임을 호도하고 의도적으로 국민을 헷갈리게 했다. 또 자신의 고의적 행위를 멀찍이 밀어놓아 마치 무심코 챙기지 못한 실책인 양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어 칼럼은 폭스 장관이"나는 직무와 친분을 분별하지 못했다"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963년 크리스틴 킬러 섹스 스캔들로 물러난 육군장관 존 프로퓨모의 사임 성명을 모범으로 든 것이다. 프로퓨모는"나는 내각과 의회를 오도(誤導)했다"고 능동화법으로 말했다고 한다. 애초 거짓과 둔사로 은폐를 시도한 과오를 솔직히 시인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모르나, 치욕스레 퇴장한 정치인 프로퓨모는 뒷날 헌신적 봉사와 기여를 통해 서훈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우리'정치와 말'의 수준은 아직 낮지만, 언론과 유권자들부터'知言'을 되새길 때다. 서울시장 선거가 이미 보여주듯, 온갖 선(善)한 말로 위장한 후보들의 진실성을 헤아리기가 갈수록 힘겨울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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