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겨울은 길다. 1년의 반 이상인 7개월 동안 평균 영하 38도의 혹한이 이어진다. 천막집인 게르를 옮겨 다니며 사는 유목민들에게 난방은 생사가 달린 문제다. 대부분 유연탄 난로를 쓰지만 온기가 3~4시간밖에 지속되지 않고 매연도 심하다.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의 김만갑 적정기술전문위원이 개발한 축열기 '지세이버'(G-saver)는 이런 몽골의 사정을 정확히 헤아린 제품이었다. 온기가 유지되는 시간을 5~6시간까지 늘렸고 매연은 줄였다. 제작비를 낮춰 저소득층에 보급했다.
김 위원은 "첨단 기술이 투입된 것은 아니었다. 맥반석과 진흙, 산화철 등 몽골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썼다. 현지인들 스스로 만들어 쓰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굿네이버스는 지세이버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난해 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생산공장 '굿쉐어링'도 세웠다. 현지 사정에 맞춰 개발된 제품을 생산하는 데 현지인들을 고용하고 그 수익은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생산 구조를 만든 것이다.
12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서린빌딩에서 굿네이버스와 SK 사회적기업사업단 주최로 열린 '적정기술 사회적기업 세미나- 참여적 개발과 적정기술'에서는 굿네이버스가 3년째 몽골과 아프리카 등에 보급하고 있는 적정기술 개발 사례가 발표됐다. 적정기술은 기술 발전의 흐름에서 소외되어 있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현지의 실정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환경 오염과 사회적 비용은 최소화하는 이른바 '착한 기술'이다.
사막에서 몇 시간 동안 물통을 옮겨야 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짐을 덜어준 굴리는 물통 '큐드럼', 물이 오염된 곳의 사람들이 쉽게 식수를 구할 수 있도록 만든 빨대 모양의 휴대용 정수기 '생명의 빨대' 등이 대표적 적정기술 적용 사례다.
아프리카 차드에서는 사탕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숯을 보급했다. 최근 정부가 벌목 금지령을 내리면서 구하기 어려워진 취사용 목재의 대체 연료다. 현지에 흔한 재료인 사탕수수를 불완전 연소시킨 후 그 가루를 녹말성 식물뿌리인 카사바와 뭉쳐 말리는 간단한 과정을 통해 현지에 꼭 필요한 기술을 만들어냈다.
망고를 오래 보관하고 쉽게 유통시킬 수 있도록 건조시키는 기술은 차드의 기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네팔에서는 흙을 단단히 압축시킨 흙벽돌을 개발해 우기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게 했다.
이성범 굿네이버스 사회적기업사업단 팀장은 "적정기술은 현지인을 위한, 현지인에 의한 기술"이라며 "개도국에서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와 환경도 건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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