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2020년. 로봇이 등장하고 권투를 소재로 삼았다. 제목도 냉기 가득한 '리얼 스틸'(Real Steel).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에 기댄 액션만으로 관객의 눈길을 붙들려는 SF영화로 여겨진다. 하지만 통념은 시작부터 무너진다. 석양이 지는 평원을 배경으로 따스한 컨트리 음악이 흐르며 스크린이 열린다. SF영화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 스크린에 빛을 더할수록 '리얼 스틸'은 SF영화이면서도 가족드라마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영화의 성격이 명확해지면 관객은 스크린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리얼 스틸'은 고전이 돼 버린 두 권투영화 '록키'와 '챔프'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권투선수 출신으로 가족을 외면하고 떠도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동행하게 되는 어린 아들의 모습은 존 보이트 주연의 '챔프'(1979)를 연상시킨다. 폐기처분 됐던 로봇이 특별한 조련을 거쳐 최강의 로봇과 일전을 펼치게 되는 과정은 '록키'를 떠올리게 한다.
익숙한 장면, 예측 가능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의외로 참신하다. 링에 오르는 로봇이라는 SF 요소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볼거리를 제공하며 영화는 상투성을 극복한다. 돈이라면 아들도 버리는 매정한 아버지 찰리(휴 잭맨)와, 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소년 맥스(다코타 고요)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가슴을 울린다. 사람 사이의 권투라면 비정하게 비쳐질 링 위의 장면들은 로봇을 통해 통쾌한 정서를 안긴다.
할리우드의 힘이 새삼 느껴지는 영화다. 권투 장면에서 사람의 동작을 따라 하는 로봇의 세세한 움직임이 정교하다. 1980년대를 풍미한 유명 권투선수 슈러 레이 레너드의 경기 장면을 활용해 박진감을 전하는 최신 디지털 기술도 눈길을 잡는다. 명작이라 할 수 없지만 감동과 재미, 볼거리 제공이라는 상업영화의 미덕에 충실하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숀 레비 감독. 12일 개봉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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