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교재에 오류가 있다며 정말로 화가 나서 게시판에 글을 올린 분이 있더군요.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직접 만났습니다. '사장이 진짜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곽덕훈 EBS 사장은 자사 홈페이지에 'EBS 대표와의 대화' 코너를 마련해두고 사소한 질문에도 일일이 답변을 해준다. 방송통신대 컴퓨터학과 교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을 지낸 그는 교육분야의 손꼽히는 IT 전문가다. 그 동안 EBS 수장을 교육관료 출신이나 방송계 인사가 맡아왔던 터라, 2009년 임명 당시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15일 취임 2주년을 맞는 곽 사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특히 이러닝(IT 활용 학습)을 중심축 삼아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빠른 변화와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12일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발짓 해가며 답변을 할 정도로 열의에 넘쳤다.
곽 사장은 평소 스마트폰과 노트북 외에 아이패드와 DMB가 구현되는 갤럭시탭까지 들고 다니며 EBS에 관한 의견에 실시간 대응한다. 눈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EBS 관련 기사를 검색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는 "방송사가 IT에 굉장히 민감할 줄 알았는데 와 보니 테이프를 재활용한다고 예전에 만든 걸 그냥 지워버리는 등 엉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아이패드를 주고 실시간 결재 등 빠른 일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지난 2년간 EBS의 영업사원이라는 생각으로 뛰었다"는 곽 사장은 "디지털 시대에 이제 방송은 프로그램이 아닌 틀에 따라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초등학생들 얼마나 스마트폰을 잘 씁니까. 공급자 관점에서 보지 말고 그들이 편한 방법으로 EBS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해야죠." 그는 방송 위주의 교육 프로그램을 웹을 기반으로 한 교육 콘텐츠 중심으로 터를 확장시켰다. EBS가 운용하는 사이트도 초등학생, 중학생 전용 등으로 세분화했고, 지난해에는 장애인 전용 사이트도 구축했다.
EBS는 양질의 다큐멘터리를 접할 수 있는 창구로도 귀한 존재다. 곽 사장은 "EBS만이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 눈을 즐겁게 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콘텐츠를 만들도록 독려한다"고 말했다. 그 덕인지 최근 다큐 분야 성과가 더 탄탄해졌다. 10부작 다큐 '학교란 무엇인가'는 최근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고, 3D 다큐 '신들의 땅, 앙코르'는 한국 다큐 사상 최고가로 미국에 수출했다. 올해 9월까지 EBS 다큐 수출 실적은 총 85만1,000달러로, 지상파 3사를 다 합친 것(65만4,000달러)보다 훨씬 많다.
또 '다큐프라임' 등에 작품을 공급해온 외부 독립PD들과의 상생 전략은 '외주=후려치기'라는 공식이 만연한 방송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촬영 원본 공유, 사용권한 부여로 외주사가 2차 저작물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콘텐츠 공유 생태계 구축에 앞장선 것.
그러나 재원 문제는 여전히 난제다. 곽 사장은 수신료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TV 수신료를 통상 KBS 시청료쯤으로 알고 있지만, 수신료는 본래 공영방송을 유지하기 위한 재원이다. 한데 현재 가구당 월 2,500원의 수신료 중 EBS에 돌아가는 몫은 고작 70원뿐이다. 지난해의 경우 KBS가 전체 수신료의 90.5%인 5,146억원을 가져갔고, EBS는 2.8%인 159억원만 받았다. 한국전력이 챙기는 수수료 384억원보다 못한 수준이다.
곽 사장은 "공영 교육방송이 교재를 팔아서 버텨야 하는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신료가 3,500원으로 인상되면 EBS에 최소 500원은 배분돼야 합니다. 현재 EBS 자체수입 가운데 수험서 등 교재판매가 무려 40% 가까이를 차지해요. EBS가 방송사인지 출판사인지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곽 사장은 "지난 7월 콜롬비아에 EBS를 모델로 한 교육방송국 설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교육 한류'를 이끌고 있는 추세를 계속 가지고 가기 위해서라도 수신료 비중을 높인 재원 확충이 필수"라고 말했다. 현재 EBS는 사우디아라비아, 미얀마와도 교육 콘텐츠 수출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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