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실수가 나의 즐거움이 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TV에서 배우들의 재미있는 NG장면만을 따로 모아 보여주는 프로를 좋아한다. 실수 장면을 보면서 웃다가도 가끔은 녹화방송 뒷이야기라는 이유로 부러울 때가 있다. 무대예술공연은 무조건 생방송이기 때문에 모든 NG 장면이 여과 없이 그대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악기나 소품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유명 연주자라고 해도 외우고 있던 악보나 가사를 잃어버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수시로 무대에 서는 필자도 본의 아니게 생기는 해프닝은 피해갈 수 없다.
이십여 년 전 유학을 마치고 독주회를 하는데 명색이 귀국 첫 독주회라 연미복을 새로 맞춰 입는 등 나름 신경을 썼다. 나는 연주에 몰두하느라 전혀 몰랐고 연주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서 바이올린 악기에 잘못 끼어있던 넥타이가 슬금슬금 오른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필이면 방송국에서 녹화해 TV에까지 방영됐고 연주가 다 끝난 후 나비넥타이가 오른쪽 목에 붙은 채로 청중을 향해 인사하는 나의 구겨진 스타일이 귀국을 알리는 첫 모습이 되었다.
모 교향악단 악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공연 당일 저녁식사를 한 후 연주 전까지 여유시간이 있어 잠깐 누워 쉰다는 것이 그만 깊이 잠들고 말았다. 악장은 대기실을 혼자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준비 없이 자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연주 시작과 함께 모든 단원이 무대에 착석한 상태에서 무대 뒤에서는 '악장 입장!' 이라는 방송이 울리는데 그 소리가 나에게 들릴 리 없었다. 갑자기 무대감독이 악장실로 뛰어 들어왔고 그때부터 정신 없이 연주복을 갈아입고 무대입장 하는데 까지 불과 3~4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도 객석에서는 눈치채지 못한 듯 했지만 얼굴은 모기에 물려 벌겋게 부은데다 쿠션 자국까지 남아있었던 것을 단원들에게 들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에피소드다. 학창시절 성악과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무용담 수준의 무대NG가 있다.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 오페라가 활성화되어 많은 공연들이 열렸다. 인기 있는 성악가는 동시에 다른 공연을 겹쳐서 하기도 해 드물게는 대사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교수님이 모 오페라 3막에서 상대방의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이 있었는데 상대 배우가 엉뚱하게도 갑자기 2막에서 칼을 빼 들고는 "내가 지금 그대를 죽이리라!"하고 외쳤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교수님은 순간 "아~ 난 아직 죽을 때가 아니고..."라는 있지도 않은 대사를 노래로 얼버무렸고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상대 배우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칼집에 유유히 넣으며 "그럼 나중에 그대를 죽이리라!" 하면서 그 상황을 넘어갔다고 한다.
오래 전 독일 신문에는 '목졸린 카르멘'이라는 머리기사가 큼직하게 실린 적이 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카르멘의 애인 돈 호세가 카르멘의 변심에 앙심을 품고 칼로 카르멘을 찌르는 클라이막스 장면이 있다. 그 순간 돈 호세역을 맡은 주연 배우가 소품인 칼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할 수 없이 자기의 손으로 목을 조르는 것으로 끝을 맺은 것이다. 오페라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던 대다수 관객들이 클라이막스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가 우스꽝스런 비극적인 장면연출에 결국 폭소를 일으켰다는 일화이다.
무대 공연이 완벽함을 추구하며 감명을 주지만 가끔 공연자들의 피를 말리는 실수가 관중에게는 긴장과 웃음을 주면서 화합의 장을 이루기도 한다. 인생이 항상 심각해선 안 된다는 어느 도인의 이야기가 이럴 땐 위안이 되기도 하다.
송재광 이화여대 음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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