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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금융업계 돈 잔치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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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금융업계 돈 잔치는 안 된다

입력
2011.10.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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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시대다. 봄에 유럽에서 시작된 '분노한 사람들'의 시위가 영국의 소규모 폭동을 거치며 잦아드나 싶더니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시위로 활기를 되찾았다. 지구촌 곳곳으로 번지는 시위에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15일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서울역 등지에서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갖지 못한 99%'를 자임하며 '가진 1%'의 변화를 요구하는 '점령하라' 시위의 힘은 99%와 1%의 선명한 대비가 던진 상징성에서 비롯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상징성에 비추어 수백억원의 연봉을 챙기는 최고경영자(CEO)가 첨단산업은 물론이고 전통산업 분야에도 수두룩한데 왜 유독 금융업이냐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금융업 종사자 가운데 소득 상위 1%에 들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는 볼멘소리도 마찬가지다.

성큼 다가온 '분노의 시대'

월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현실로 밀어닥친 생활고에 시달린 서민들이 분노의 표적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국의 경제불안이 오랜 빚잔치의 뒤끝이라면, 금융산업은 그 빚잔치를 부추기고 혜택을 누렸다. 고액 급여와 성과급으로 인재를 빨아들이는 동시에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뒤집어 산업경쟁력을 좀먹은 죄도 크다.

시위대가 택한 '1%'도 우연하지 않다. 로버트 라이시 UC 버클리대 교수처럼 미국 경제위기의 본질을 부의 편중의 심화에서 찾을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지표가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이다. 1929년 대공황 직전에 23%를 넘었다가 70년대에 8~9%로 꾸준히 내려간 그들의 몫이 최근 다시 23%를 넘어섰다. 이렇게 늘어난 점유율은 중산층의 몰락과 하층의 상대적 빈곤 심화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정서적 반감을 부르는 데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소득 계층별로 뚜렷한 한계소비성향(소비증가분/소득증가분)의 차이를 감안하면, 부의 편중의 심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반인 총수요를 갉아먹어 장기적 회복 전망마저 흐리게 하는 범죄적 현상이다. 나아가 이런 범죄적 현상이 단순히 고액연봉뿐만 아니라 월가의 오랜 자랑인 금융공학으로 뻥튀기 된 것도 사실이다. 가히 만병의 근원이다.

더구나 2008년의 '리먼 쇼크' 이후 공적 자금을 먹고 살아났으면 과거의 탐욕을 반성하고 절제해 마땅한데도 그러지 못했다. 2009ㆍ2010년의 반짝 회복을 틈타 돈 잔치가 되살아났고, 그런 자세를 더블딥 우려와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IMF 위기' 당시 9.7%였던 상위 1%의 국내 순자산점유율이 2007년 16.7%로 늘었고, 현재는 20%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된다. 절대 액수야 미국과 비교할 수 없지만 금융업의 돈 잔치가 두드러진 지 오래다. 올해도 연말의 성과급 잔치와 고액 배당 전망이 무성하다.

금융업도 사업이고, 많이 벌어 임직원과 주주에게 많이 주는 게 기업의 1차적 책임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려면 우선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밀턴 프리드맨조차 강조한 '사회적 규범'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답해야 한다. 예대 마진을 늘려 가계에 부담을 지우고,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최소화를 미루어 왔다. 오죽하면 1만원 미만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하도록 하자는 엉뚱한 논의가 나왔을까.

폭발의 첫 표적이 되어서야

금융기관은 스스로의 출자(出自)를 너무 많이 잊었다. 소위 금융 신기법을 빼고 나면 금융은 일종의 중개업이다. 존재 근거인 신뢰도나 정보도 사회가 주었지, 스스로 만든 게 아니다. 더욱 겸손해져야 할 이유다.

더욱 현실적 이유로 분노의 폭발을 피해야 할 필요성을 들고 싶다. 사회주의 몰락으로 분노의 폭발이 더 이상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 수 없음은 입증됐다. 그러나 분노는 합리적 이유 없이도, 결과에 대한 가늠 없이도 얼마든지 폭발할 수 있고, 그래서 위험하다. 커지는 분노의 첫 표적이 되지 않도록 간사한 지혜에라도 기대라.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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