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비정규직 "시급·사회보험·보너스 정규직과 똑같아요"
#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인근 맥도날드에서 1년째 일하고 있는 점원 스테파니(30)씨는 파견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1주일에 30시간가량 근무하는 그의 시급은 9유로로 한 달에 약 900유로(143만8,200원)를 받는다. 직접고용된 정규직이건 파견업체 소속이건 시급엔 차이가 없다. 그는 "정규직과 똑같이 사회보험 혜택은 물론, 3개월마다 보너스도 받는다" 고 말했다.
# 스웨덴 스톡홀름대에 다니면서 주말에만 6시간씩 스웨덴과 핀란드를 오가는 유람선을 청소하는 올가 바라키나(24)씨도 파견노동자다. 5년 전부터 시간제로 일을 시작했다가 2년 전부터 무기계약직이 됐다. 그에게는 아르바이트이고 우리나라 개념에서는 비정규직이지만, 고용불안은 없는 셈이다.
# 영국 런던의 건설노동자 존(24)씨는 비가 와서 일을 공쳐도 걱정이 없다. 한국의 건설노동자 65%가 비정규직으로 체불에 시달리는 것과는 달리 그는 정규직이다. 5년 사이 그의 임금은 2배로 올랐고 회사는 조경사 자격증을 따도록 교육비도 대주었다.
단협 적용에 예외 없어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만큼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노동문제도 없다. 사실 해외에서도 1990년대 이후 청소나 경비 등 비숙련직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이 늘고 있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4.5%에 불과했던 프랑스의 비정규직은 2009년 13.5%로 늘었고 독일도 2009~2010년 신규 일자리의 75%가량이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는 우리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문제가 되는 일은 없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을 실현하는 제도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영국처럼 건설노동자까지 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이 있어도 차별이 없는 이들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취재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프랑스는 파업의 천국이라는 인상과는 달리 노조조직률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8% 수준이다. 그런데도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사업장은 전체의 90%에 달한다. 1950년 제정된 노동법의 '만인효(萬人效·erga omnes)' 라고 불리는 단체협약확장규정 때문이다. 중앙노조(CGT) 등 5개 대표노조가 경영자단체들과 단협을 체결하면 노조원이건 비노조원이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구속을 받는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고용불안정성이 높은 만큼 비정규직에 금전적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프랑스에는 계약을 해지할 때 재직기간 총임금의 10%를 해고수당으로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강력한 법도 법이지만 이것이 실효성을 갖도록 하는 다양한 통로가 근로현장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인다. 독일 베를린주정부 정책연구기관의 레나 힙 전임연구원은 "대부분 독일 기업에 존재하는 종업원평의회가 파견노동자의 임금이 너무 적지 않은지, 해당 자리가 꼭 비정규직이어야 하는지를 검토하고 사측과 논의한 결과를 종업원평의회가 수용해야만 고용이 이루어진다" 고 설명했다.
오랜 노조운동, 합의의 산물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의 권리가 이렇게 보호받기까지는 오랜 노조운동의 전통과 지난한 사회적 합의과정이 있었다. 스웨덴에는 다른 업종끼리도 임금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중앙노조(LO)와 사용자연맹(SAF) 간 중앙교섭에 따라 똑같은 임금인상률을 적용하는 연대임금제(solidaristic wage policy)가 55년에 도입됐다. 중앙노조 출신의 라이모 팰시낸 사민당 의원은 "30년대 파업을 하던 노동자 5명이 사망한 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연대임금제를 도입했다" 고 배경을 설명했다. 중앙노조의 켄트 악홀트 교섭부장은 고임금 노동자들의 반발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스웨덴도 (오랜 과거에) 한국처럼 곪고 곪다가 이런 제도에 동의하게 된 것" 이라고 말했다. 팰시낸 의원은 "생산성 향상 없이 저임금으로만 버티려는 기업은 퇴출이 당연하다는 국민적 인식이 있다" 고 덧붙였다.
스톡홀름대 사회연구소의 에스킬 봐덴흐웨 교수는 더욱 장기적인 역사적 맥락을 소개했다. 그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38년부터 전통으로 자리잡아 지금은 개별교섭이 늘었어도 지켜지고 있다" 고 말했다.
스톡홀름ㆍ파리=이왕구기자 fab4@hk.co.kr
베를린ㆍ런던=김지은기자 luna@hk.co.kr
■ 비정규직 확산 유럽서도 논란
유럽 각국은 비정규직이 임금이나 복지혜택에서 차별이 없는데도 논란이 있다. 정체된 경제성장으로 인한 실업문제를 해소하려면 비정규직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 대해, 질 낮은 일자리 확대는 의미가 없다는 노동계 반대가 맞서고 있다.
독일은 2003년 좌파인 슈뢰더 정권이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한 이후 우파정부인 현 메르켈 정권까지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2004년 1.1% 였던 독일의 파견노동자 비율이 올해 2.7%로 높아졌고, 1999년 7.4%였던 기간제 노동자들의 비율은 8.9%(2009)까지 치솟았다. 스웨덴도 시간제 고용을 장려한 결과 2009년 비정규직 비율은 15.3%로, 영국(5.7%)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높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영국의 경제문제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 화이자 섀힌 연구원은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이들은 비숙련, 저임금 직종에 몰리기 때문에 직종간 임금 격차는 심해지게 마련"이라며 "결국은 그들의 노후복지나 빈곤해소에 들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문제 활동가인 프랑스의 카로자 지아니씨는 "비정규직 고용으로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하는 것은 정치가들의 주장일 뿐 이 정책의 본질은 자본의 이윤추구"라고 비판했다. 독일의 서비스업노조 경제정책국 자비네 라이네 연구원은 "최고의 복지는 무조건적인 일자리 만들기라는 시각에는 반대한다"며 "적정임금과 함께 안정적인 고용기간이 보장돼야만 저소득층과 사회불안을 낳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스웨덴 스톡홀름대 사회연구소 에스킬 봐덴흐웨 교수는 "청년층의 경우 여러 일자리를 옮겨다니며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에 거부감이 없다"고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부터 주 15~30시간 무기계약직에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시간제 일자리 지원정책을 펴고 있지만 비정규직 차별이 극심한 우리 환경에서는 더욱 논란이 거세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조건에 별 차이가 없는 유럽과 달리 우리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며 "일자리 늘리기에 앞서 차별부터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파리=이왕구기자 fab4@hk.co.kr
런던·베를린=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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