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대한비만학회가 비만의 날(10월 16일)을 앞두고 발표한 자료(한국일보 12일자 12면)는 뇌의 충격인지세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소득 수준에 따라 재분석한 결과, 2007~2009년 소득 하위 0~25% 가정의 소아ㆍ청소년(2~18세) 가운데 비만유병률은 9.7%인데 비해 소득 상위 0~25% 가정 아이들의 유병률은 5.5%였다. 못 사는 집 아이들이 비만아가 배나 많은 것이다.
이와는 무척 대조되는 기사(한국일보 11일자 11면)도 있었다. 대학가에 채식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 '지난해 10월 서울대에 고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 채식당이 처음 생긴 이후 올 6월 동국대, 8월에 서울대 2호점이 문을 열었다. 연세대에서는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학생식당 내에 채식 식단 마련을 구상 중이다. 대학이 밀집한 신촌 등에서는 젊은이들을 위한 5,000원대의 채식 전문 레스토랑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도입 초기지만 호응은 당초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다. 다만 일반 학생식당이 3,000원 전후인 데 반해 가격이 5,000원을 웃돌아 부담이 큰 게 문제다.'
한쪽에선 가난 때문에 방치된 아이들이 비만으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총진군하는 사이 다른 한쪽에선 고가의 채식을 즐긴다? 한국 사회의 절단면을 여실히 까발리는 두 기사에 가슴이 우지끈 깨지는 아픔을 느꼈다. 이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저소득층 부모는 대개 맞벌이를 한다. 그것도 밤 늦도록. 죽어라 일해야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다. 결국 아이들은 철처히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진다. 아무 제지를 받지 않는 이 아이들은 몸은 움직이지 않고 TV나 보면서 라면 햄버거 등 고열량 인스턴트 식품으로 식사를 한다. 피자 한 판 시켜 놓고 하루 종일 끼니를 그것으로 때우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균형 잡힌 채식을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채식당에서 아이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주요 도시마다 채식당이 많이 생기고 있다. 앞에서 보듯 대학과 대학가에서도 이런 식당이 등장했다. 시민단체가 이런 곳을 묶어 '알찬 몸 식당'같은 간판을 붙이고 저소득층 아동 무료 채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재원이 부족하다면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식당에 오는 손님에게 밥값을 조금 더 받아 이를 아이들 식사 비용으로 돌리는 것 역시 가능하다. 손님들도 어려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식당이 비용을 조금 분담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한가지 시급한 것이 저소득층 비만아의 무료 치료다. 돈이 없어 뚱뚱해진 저소득층 비만아들이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확 끊어 내야 한다. 여기엔 아무래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의 도움이 필요하겠다. 의사와 한의사들이 사회 기여 차원에서 이들에게 무료 치료 혜택을 주도록 캠페인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건강권은 무척 소중하다. 가난한 아이라고 해서 건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을 방치한다면 이건 어른들이 할 노릇이 아니다. 이제 모두가 한국에서 저소득층의 비만을 추방하기 위한 작은 행동에 단호히 나서야 할 때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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