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들의 오랜 꿈은 신약개발. 하지만 이 오랜 소망은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주요 산업들의 경쟁력이 대부분 세계 정상수준에 도달했지만, 신약개발능력으로 평가되는 제약사들의 현 주소는 아직 글로벌 기업들과 거리가 멀다.
한 개의 신약을 개발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0년. 돈도 1조원 가까이 든다. 임상시험까지 가더라도 성공률은 8%에 불과하다. 국내 제약산업 110년 역사에서 신약으로 인정받은 게 14개에 불과한 실정. 하지만 다국적제약사들은 지난 10년간 총 122여 개의 신약을 쏟아냈다. 대체 해외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엔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미래에 투자하라: 노바티스
세계 3위 제약사 노바티스는 지난 4월 한국의 신생 바이오회사인 큐로사이언스에 10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큐로사이언스는 2008년 설립돼 이렇다 할 매출이 없는 신생 벤처회사. 하지만 노바티스는 이 회사가 에이즈, C형간염, 결핵 등 감염성 질환 치료제 신약 후보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여기에 노바티스의 연구개발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대형 치료제로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
투자한 곳은 '노바티스 벤처펀드'다. 1996년 설립된 이 펀드는 현재 7억 달러 규모로 60개 이상 비상장 벤처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2008년 우리나라에 벤처펀드를 조성, 현재 네오믹스, 파멥신, 큐로사이언스에 투자하고 있다. 이 펀드의 지원으로 항고혈압제 '라실레즈'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스위스의 스피델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한국노바티스 김연준 전략제휴부장은 "단기간의 수익성이 아닌 벤처기업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개발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싹수를 본다: 일라이 릴리
일라이 릴리는 세계 최초로 인슐린을 상용화한 다국적 제약사. 이 회사는 가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팀 '코러스'를 통해 신약개발 비용과 시간을 크게 단축하고 있다. 29명으로 꾸려진 이 연구팀은 신약 개발 작업에 들어가기 전 후보 물질을 대상으로 성공 가능성을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코러스는 2002년 설립 이래 총 18개의 신약 물질을 검증, 3개에 대해 합격 판정을 내렸다. 덕분에 릴리는 신약개발 기간을 1년 정도 앞당기고, 1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도 절감했다. 야니 윗스트허이슨 한국 릴리 대표는 "코러스는 연구 예산을 줄이면서도 신약 개발 후보 물질의 탐색 건수를 늘린 혁신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손을 잡아라: 화이자
신약개발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자 다국적제약사들 사이에선 한때 인수 합병(M&A)이 유행했다. 덩치를 불려 개발 비용을 감당하자는 것. 화이자는 2000년 워너램버트를 인수해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로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인수합병이 한계에 부딪히자 여러 기관들과 손을 잡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산업계와 학계, 연구원 등과 유기적인 협력관계에 구축하는 것. 이를 위해 올해 뉴욕과 보스톤 등의 대학의료센터들과 화이자 치료혁신센터를 개설했다. 한국화이자는 2007년 생명공학연구원과 공동연구에 들어갔고, 2008년에는 서울대, 연세대 등 4개 대학병원을 `화이자 핵심임상연구기관'으로 선정했다. 이 기관이 1상 임상단계에서 참여했던 폐암 치료제 '잴코리'는 지난 8월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다. 한국화이자 이원식 전무는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 새로운 기술의 신약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며 "올해도 3건의 연구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여러 기관들과의 제휴와 협력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D(Development)보다 R(Research): 머크
머크의 '자누비아'는 2007년 제약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 갈리엥상에서 '최고의 약'상을 수상한 당뇨병 치료제다. 머크는 이 약을 개발하면서 50명의 화학자와 생물학자를 동원해 80만개 이상의 화합물을 분석했는데, 이 연구를 맡은 곳은 1만7,000여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79년 역사의 머크 연구소다. 재미과학자 피터 김이 소장을 맡고 있는 이 연구소는 임상 연구에 해당하는 D(Development) 못지 않게 기초 연구분야인 R(Research)이 중요하다는 철학에 입각해 설립됐다. 머크의 김용수 상무는 "인체 고유의 생리적 방법으로 혈당을 조절하겠다는 분명한 목표 아래 저혈당, 체증증가 등의 부작용이 적은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