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뇌병변 등 지병으로 힘들고, 이젠 나도 아프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 우리를 화장해 달라…."
11일 오전 8시쯤 전북 익산시 부송동 이모(75)씨의 집 안방에서 이씨와 이씨의 아내 김모(69)씨가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목을 맸고 아내는 머리에 둔기를 맞아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며 "처지를 비관한 이씨가 아내를 둔기로 먼저 숨지게 하고 유서를 남긴 뒤 자신도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금실 좋기로 소문난 이씨 부부의 불행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오붓한 황혼을 보내던 어느 날 아내(69)가 갑자기 쓰러진 것. 뇌출혈이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뇌병변 장애 2급을 받을 정도로 몸을 혼자서 온전히 가눌 수 없었다. 마을의 한 이웃은 "이씨가 노구를 이끌어 가며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극진히 간호를 했다"며 "동네에선 잉꼬부부로 통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사랑의 힘으로 부인을 간호하던 이씨도 세월의 무게는 이기지 못했다. 수년 전부터 치매와 허리디스크 등 각종 병마가 찾아오더니 최근엔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된 것.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엔 한 달에 병원비가 150만원씩이나 나와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주일 전 요양사에게 '다음주 쯤 우리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식에게 연락해 달라'며 아들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부인과 함께 아픈 삶을 마감했다.
익산=최수학기자 shchoi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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