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 관련 논란 중 하나가 재벌의 기부금 문제다. 그가 상임이사로 있었던 아름다운 재단이 대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았는데, 이걸 두고 '기업을 감시해야 하는 시민단체가 거액의 기부금을 받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상대 후보 쪽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10일 관훈클럽 초청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허투루 한 푼이라도 썼다든지, 개인 용도로 가져갔다든지 하면 비판할 가치가 있지만 가장 적합한 곳에 쓰면 문제 삼을 바가 아니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소 엇갈린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재벌이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조건과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재벌 기부 받는 것을 무조건 옹호할 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비판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황창순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별 시민단체가 기업기부금 수령에 대한 원칙을 조직 차원에서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했고,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기업과 시민단체가 각각 기부 매뉴얼을 정립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부 매뉴얼을 먼저 마련하고 정당한 집행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 기업은 매뉴얼 만들어 단체 엄선, NGO는 기금 계약·운영 투명하게
기업과 NGO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NGO가 기업을 견제하는 형태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화와 IT혁명이 몰고 온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는 기업과 NGO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테크놀로지와 경쟁을 주도하는 기업이 상당한 주도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NGO는 견제 뿐 만 아니라 때로는 파트너로 참여하여 사회적 책임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삶의 질'과 '환경문제 개선' 등에 책임 있는 행동을 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동시에 기업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실행하는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제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생존과 발전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필수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직접 사업을 하기보다는 NGO 후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업하는 것이 선진국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NGO들을 후원하여 세제혜택을 받으면서 동시에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활동을 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의 NGO 후원이 순수한 것이냐는 문제제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아름다운재단에 대한 기업 후원이 정치적인 이슈가 되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모범적으로 선도해 온 재단에 대한 흠집내기식의 정치적 공세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이번 기회에 기업의 NGO 후원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정립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 활동의 원칙과 기준을 정한 매뉴얼을 갖추어야 한다. 매뉴얼은 후원 NGO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논란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경우 본사의 매뉴얼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후원 NGO들을 선정하고 있다. 때로는 그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국내 실정에 맞지 않은 경우가 있지만 나름대로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공세에도 자유로울 수가 있다.
둘째는 NGO의 투명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항상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NGO들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후원이 매우 유용한 기금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업에 쓰여야 할 돈을 때로는 조직의 운영비로 사용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 경우도 있다. 후원 기업의 의도를 명확히 반영하여 계약을 하고, 그 계약에 따라 기금을 용도에 맞게 사용한 후 이를 공개해야만 NGO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기업은 사업후원의 경우에도 그 일을 수행하는데 투여되는 NGO 운영비를 일정부분 부담해야 한다.
셋째는 기업과 NGO의 건전한 관계를 유도할 수 있는 언론과 정부 및 시민의 감시체계가 있어야 한다. 기업이 NGO를 후원하여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이러한 관계가 결탁의 관계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 이해관계 얽힌 감시형 단체는 원칙적으로 기업 기부 받아선 안돼
모든 돈에는 꼬리표가 붙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짜는 없다는 이야기다. 검사나 정치인들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후 언제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그런 일을 볼 때 마다 차라리 수사나 기소할 의지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업가들이 권력자들에게 돈을 줄 때는 반드시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것이고, 부자들이 단돈 1원도 대가 없이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재벌이 시민단체에 기부를 할 경우 아무런 반대급부를 예상하지 않고 흔쾌히 쾌척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 경우 시민단체의 감시와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기대가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기부나 워런 버핏의 기부가 모두 반대급부를 예상한 계산적인 기부라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속담처럼,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부자가 사회에 진 빚을 갚고, 사회공헌 즉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큰 뜻이 있을 수도 있다. 재벌이 돈을 기부하는 조건과 상황을 봐야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한편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의 정의와 민주를 추구하는 시민단체로서는 원칙적으로 재벌의 돈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특히 재벌을 편법 경영을 감시하는 단체, 경제정의를 외치는 단체, 노동자 인권을 외치는 단체는 재벌의 돈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운동의 기본적 대의를 근본으로부터 허무는 일이 되고, 그들이 주창하는 운동이 실제로는 진정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시민단체 중에서도 권력이나 자본과 대립 전선에 서서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주창형, 혹은 감시형 단체가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비정부기구(NGO)인 경우, 즉 공익을 추구하는 복지기관이나 재단 등과 같은 경우가 있다. 과거 환경재단의 이사장이 재벌기업의 이사로 일하고 재벌의 협찬을 받아서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다. 만약 환경재단의 업무가 재벌기업의 환경파괴 문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을 하는 단체였다면 그의 처신은 확실히 비판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 재단이 환경교육, 환경운동 활동가 양성이나 계몽적인 활동을 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었다면 재벌의 후원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시민단체로는 할 수만 있다면 재벌 돈을 안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모든 시민단체가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지는 않다. 특히 공익 재단을 시민단체로 봐야 할지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NGO 혹은 시민단체가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철칙은 없다. 재벌의 시민단체 후원 문제는 그 단체의 성격, 사업내용, 취지가 어떠한지, 그리고 재벌이 돈을 주는 방식, 상황, 조건 등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할 문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기업의 기부 동기 폄하 유감, NGO별로 윤리 기준 정해야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의 서울시장 출마선언 이후 그가 몸담았던 조직의 활동에 대한 다양한 논쟁거리가 제기되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대기업이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가'이다. 참여연대의 대기업 비판과 아름다운재단의 기부금 수령의 연관성에 관해 양측의 주장이 달라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관계 파악의 한계 때문에 어렵다. 다만 이번 논쟁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주요 이슈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기부자의 기부동기가 폄하된 것 같아 유감이다. 개별기업마다 회사차원의 기부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의 칼날을 피할 목적으로 재단에 기부금을 낸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해석이다. 최근 많은 기업들은 기업기부가 가지는 영향 때문에 기부영역이나 기부단체, 그리고 기부방식에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요즘 같은 전략적 기업사회공헌의 시대에 시민단체에 보험을 들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기부를 한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과한 주장이다.
둘째, 기부행위에는 기부에 관한 실정법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를 기부금모집의 윤리라고 부른다. 이번 논쟁은 기업과 시민단체 사이의 기부금에 관한 윤리적 표준과 원칙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비영리조직이 기부금에 관한 윤리적 쟁점들을 사례별로 제시해서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셋째, 개별 NGO가 기업기부금 수령에 대한 조직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NGO인 국경없는의사회는 기업으로부터의 기부금에 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특정한 종류의 기업에서 기부금을 수령하는 것과 우리 단체의 인도주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 사이의 잠재적인 갈등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에서 기부금을 수령할 때는 다음의 원칙을 지킨다. 우리 단체의 인도주의적 의료지원의 목적과 직접적인 갈등관계에 있거나 제한하는 활동을 하는 기업이나 산업, 그리고 그 기업이 설립한 재단으로부터는 기부금을 받지 않는다. 이런 일반원칙에 더해서 담배회사, 주류회사, 무기회사, 그리고 제약회사로부터의 기부금도 받지 않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조직설립의 목적에 대한 신념과 기업기부금 수령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통하여 1999년 노벨평화상 수상 조직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재정의 일부를 기부금에 의존하는 시민단체나 비영리조직은 공공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 기부금 모금에 관한 윤리를 포함해서 조직의 책임성의 문제에서 비영리조직도 열외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적 요청을 잘 감당한다면 우리의 시민사회가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황창순 한국비영리학회장· 순천향대 사회복지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