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MB노믹스의 근간인 '선택적 복지'를 공식 폐기했다. 대신 새로운 복지당론으로 '평생 맞춤형 복지정책'을 채택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가열될 복지논쟁에 대비해 현 정권과 분명한 정책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에 따라 그제 채택된 새 복지당론의 취지는 '모든 국민에게 평생 살아가는 동안 생애 단계별로 꼭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라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국민에게'라는 복지 수혜대상의 범위다. 선택적 복지가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에 대한 구휼적 복지에 방점을 둔 것이라면, 새 복지당론은 육아나 교육, 주거 등의 분야에서 모든 국민에 대한 무차별적 복지를 천명함으로써 진보 진영의 '보편적 복지'와 사실상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새 복지당론을 따르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직을 걸고 고수하려 했던 '소득 하위 50%에 대한 무상급식' 주장도 자연히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감안해 한나라당이 10ㆍ26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무상급식 당론을 내지 않기로 어정쩡한 입장을 정하자 같은 당 전여옥 의원은 격정을 토로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지난 8월 결연한 의지로 전면 무상급식 반대투표에 나선 215만 지지자들을 배신했다"며 "원칙을 표 계산의 꼼수로 폐기한 정당, 정당 맞습니까? 한나라당!"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보편적 복지'로 선회한 한나라
정당인으로서 전 의원 나름의 소신을 충분히 존중하지만, 사실 한나라당의 변신은 황우여 원내대표의 '반값등록금' 주장과 홍준표 대표의 '친서민' 캠페인이 시작될 때부터 예고된 것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엉거주춤했던 것도 그래서였고, 이번 당론 확정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집권이 제1 목적인 정당이 민심을 좇아 당론을 바꾸는 걸 굳이 탓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결함에 따른 부의 양극화와 사회적 불공정의 확대, 중산ㆍ서민층의 몰락과 전반적인 삶의 질 하락 등 우리 사회가 맞고 있는 새로운 도전은 한나라당처럼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에도 불가피한 변화를 강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새 복지당론에 따라 앞으로 '나라가 국민에게 이런저런 복지혜택을 제공하겠다'는 복지공약은 여야 간 차별성이 거의 없어지는 '두루뭉술한 상태'로 흘러가게 됐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한나라당의 평생 맞춤형 복지정책은 이미 시작된 무상보육정책을 틀로 한 육아종합정책을 1단계로 잡고 교육희망사다리정책(2단계), 일자리와 주거 보장(3단계), 건강과 노후생활 보장(4단계) 등을 포괄했다. 이 분야의 복지를 보편적으로 추진한다면 민주당 당론인 무상보육ㆍ무상급식ㆍ무상의료에 반값등록금ㆍ일자리복지ㆍ주거복지를 더한 '3+3'정책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다.
여야, 재원 조달 방안 명확히
여ㆍ야 복지공약의 '공급상품'이 비슷해짐에 따라 이제 유권자들로서는 복지에 들어가는 돈을 누가, 얼만큼, 어떻게 낼 것이냐는 '재원 조달'의 방법론에 따라 지지 정당을 골라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하지만 아직은 양측 모두 이에 대해 뚜렷이 차별되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의 경우 장기적으로 개인ㆍ사업자 중 실질 소득세를 거의 부담하지 않는 중간소득구간에 대한 과세 확대나 부가세 인상 등을, 민주당의 경우 사실상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해 조세수입을 더 늘려야 한다는 정도의 대강만 내놓았을 뿐이다.
공짜로 길러 주고, 공짜로 밥 주고, 공짜로 치료해 주고, 값 싼 집에 일자리까지 보장하는 '천국'을 마다할 유권자는 없다. 하지만 정당이 이런 '천국'에 대한 감언이설로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는 계산이야말로 포퓰리즘이자 정치적 기만행위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든 야권이든 앞으론 복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그 방법론에 대해 분명하고 차별화된 입장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게 국민의 선택을 받는 공당의 자세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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