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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신작 장편소설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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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신작 장편소설 '동주'

입력
2011.10.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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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일본 교토에서 유학중 경찰에 체포된 시인 윤동주는 경찰 앞에다 두툼한 자신의 원고를 쌓아두고 일본어로 번역했다.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경찰의 강압 때문이었다. 윤동주를 면회 갔던 그의 당숙이 전한 장면이다. 윤동주의 육신은 일제의 생체실험 끝에 2년 뒤 옥사하지만, 시인으로서는 사상검증을 위해 자신의 시를 번역하도록 강요 받는 바로 이 순간 죽음을 맞았다고, 소설가 구효서(53)씨는 화자의 입을 빌려 말한다.

국내 대표적 중견 작가인 구씨의 신작 장편 <동주> (자음과모음 발행)는 바로 이 장면을 뿌리 삼아 움터 나왔다. 언어를 강요 받거나 빼앗길 때, 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상실한다는 주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동주가 경찰에 붙잡혔을 때 미발표 유고(遺稿)가 상당량 압수됐다는 소재적 모티브까지. 경찰 앞에서 동주가 번역해야 했던 그 미발표 유고의 행방과 그 비밀을 쫓아간다는 것이 소설의 기본 골격이다.

특히 한 세대의 시차를 두고 겐타로와 요코라는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해 유고를 추적하는 독특한 이중 액자 형식이 흥미롭다. 현재 시점의 화자는 재일교포 3세 겐타로. 친구의 제의로 문서검색이란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하다 친구가 잠적하자 그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유고의 비밀에 다가가는 것이 바깥 이야기다. 겐타로가 이 과정에서 동주가 살았던 아파트의 시동이었던 요코란 여성이 남긴 글을 입수하는데, 열다섯 철없던 시절 동주를 만났던 요코가 뒤늦게 동주의 유고를 찾아가는 과정이 맞물려 진행되는 것이다. 두 겹의 추리 장치라는 흥미로운 갑옷을 입긴 했지만 본격적인 추리물이라기보다 윤동주의 내면과 그 현재적 의미로 독자를 이끌어가기 위한 내비게이션 장치에 가깝다.

소설의 포인트는 윤동주를 비롯해 그 유고를 추적하는 두 화자 모두 국가와 언어간 경계에 선 인물이라는 점이다. 겐타로와 요코는 스스로를 일본인으로 알고 일본어밖에 모르고 살았지만, 겐타로는 한국인, 요코는 아이누인임을 뒤늦게 알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일제 말 국가간 경계가 모호했던 북간도에서 태어나 성장했던 윤동주처럼. 일본과 소련, 중국, 조선이라는 네 세력이 충돌했던 간도(間島)는 문자 그대로 '사이의 섬'이었다. 구씨는 "우리 땅이면서 우리 땅이 아니었던 간도는 국제적 역학 관계가 충돌하던 묘한 땅이었다"며 "실제 동주의 중학교 성적표를 보면 여러 언어를 배웠는데 동주는 그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모어를 지키는 것을 택했고, 그것이 시인으로서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두 화자의 추적을 통해 드러나는 동주의 내면은 국가나 민족간 물리적 혹은 이념적 충돌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고뇌하는 자아다. 국가나 민족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은 채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힘겹게 지키려던 삶이었다는 것이 소설의 핵심적 전언이다. 구씨는 "민족저항시인이란 굳은 살을 벗기고, 윤동주를 시인으로서 다시 위치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전작 <나가사키 파파> (2008)와 <랩소디 인 베를린> (2010)에서 제기한 근대 국민국가 비판의 연장선이다. 민족 혹은 국가란 이름으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타 공동체를 적대시해 온 동원과 배제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이'를 고민하려는 노력이다. 구씨는 "세 작품이 모두 일본과의 관계를 다뤄 '일본 3부작'을 완성한 셈인데, 다음에는 묵직한 주제에서 좀 벗어나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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