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는 대한민국 교육의 블랙홀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듣기 거북스럽겠지만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굳이 통계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고생과 학부모에게 한번 물어봐라. "왜 공부를 하느냐",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는 1차 목적이 뭐냐"고. 십중팔구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우리 교육에서 입시의 출발은 별도 전형을 통해 선발하는 중학교(국제중 등 특수목적중을 의미한다)부터라고 보는 게 적확하지만,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은 대입시에 닿아 있다. 입시의 종착지가 대입시라고 봐야 하는 이유다.
로또 전형, 묻지마 지원
입시라는 게 기본적으로 유쾌한 영역은 아니다. 소정의 절차에 따라 실력을 테스트하는 과정인데, 성적이 아닌 요소를 감안하는 정성(定性) 평가가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내신, 수능, 논술 같은 정량(定量) 평가 위주의 입시가 고착화 해 있는 탓이다. 이명박 정부가 검증 안 된 입학사정관제를 부각시키며 정성 평가 비중을 늘리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신뢰ㆍ공정성 논란이 제도를 되레 퇴색시키는 형국이다.
정량 평가가 대입시의 주류로 자리하는 한 입시 관련 비용은 줄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적 지표들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교육비는 물론, 요즘엔 전형료까지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만든다. "내 자식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면 이까짓 전형료쯤이야…"라는 학부모도 적지 않을 법하지만, 서민들에게 원서 한번 쓰는데 8만~9만원이 들어가는 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8월부터 수시모집이 시작되면서 표면화한 현상의 일단도 그런 맥락으로 여겨진다. 한 수험생은 서울에 있는 중ㆍ상위권 대학 12군데에 낸 수시 전형료로 100여만원을 썼다. 이게 끝이 아니다. 수능이 끝나면 시작되는 수시 2차때 다시 2군데에 원서를 낼 생각이고, 정시 모집에서는 3군데를 또 지원할 계획이다. 이런 추가 지원에 들어가는 전형료가 50여만원 정도 되니, 결국 전형료로만 150여만원을 쓰게 되는 셈이다(다행히 수시에 합격한다면 30여만원은 절약되겠지만).
따지고 보면 대입 전형료는 우리 입시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전형료에 함축된 의미 때문이다. 선택의 폭을 넓혀 준다는 취지에서 수시 지원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은 일견 이해되지만 부작용 역시 짚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정부가 "반발의 목소리가 많다"는 이유로 수시 지원 횟수 제한을 추진했다가 덮은 결정은 옳지 않았다. 수시 지원 제한 단 하나의 아이템을 내걸고 공론의 장을 펼치지 않은 것은 판단 미스다.
올해 대입시에서 전형료를 낮춘 대학이 70여개 정도 되긴 해도 300개에 가까운 대학 수에 비춰보면 여전히 적다. 대학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구조조정의 칼을 마구 휘두르는 모험을 정부가 즐기기보다는 체감지수가 높은 전형료 인하를 유도하는게 우선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제도 개편 필요성 크다
전형료 폭탄은'로또 입시'가 낳은 반갑지 않은 부산물이기도 하다. 3,600개가 넘는 전형이 있는 대입 지원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 자체가 입시를 공정치 못한 게임으로 전락시킨 처사라는 판단이다. 이러니 주요 과목 1등급 수험생이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대입 지원 쇼핑'을 방치해야 하는지, 딱한 노릇이다.
대입시는 역대 정부가 한두 차례 모두 집적거렸던 동네북이었으나 결과는 한결같이 신통치 않았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감소, 이 공동 목표는 번번이 무산됐다. 대입시의 영역은 이미 정부의 손을 떠나 저만치 달아나는 모양새인데,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내걸고 대학들한테 "따라오라"며 무리수를 두고 있다.
언제까지 대학 진학 문제를 정부가 통제해야 하나. 전형료에서 해법을 찾는 시도가 꼬인 입시 실타래를 푸는 출발점일 수도 있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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