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비만학회 오상우 총무이사는 최근 한 중학교 교사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제자 한 명이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려서 돌봐주지 못하자, 열량이 높고 영양가는 없는 질 낮은 음식만 먹게 되면서 비만이 심각하다며 도움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오 이사는 “학교 현장에 비만교육을 나가보면, 최근 저소득층 아이들의 비만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11일 대한비만학회가 ‘비만의 날(10월 16일)’을 앞두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층 아이들의 비만은 줄어들고 저소득층 아이들의 비만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넉넉한 몸집이 ‘부의 상징’이 아닌 ‘가난의 상징’이 돼 버린 현대사회의 추세가 소아ㆍ청소년층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비만학회는 과거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소득수준에 따라 재분석했는데, 그 결과 소득 하위 0~25% 가정의 소아ㆍ청소년(2~18세)의 비만유병률은 1998년 5%에서 2007~2009년 9.7%로 급증했다. 소득 하위 25~50% 가정의 아이들도 같은 기간 3.4%에서 8.4%로 늘어났다. 반면 소득 상위 0~25% 가정의 아이들은 6.6%에서 5.5%로 떨어졌다. 과거에는 잘사는 집 아이들이 비만인 비율이 더 높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전체 소아ㆍ청소년의 비만율은 1998년 8.5%에서 2009년 9.1%로 증가했는데, 저소득층 아이들의 비만이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인 셈이다.
소아ㆍ청소년 비만유병률은 성인 비만기준(체질량지수 25 이상)과 달리 2007년 아동ㆍ청소년 성장곡선 기준 체질량지수가 연령별 상위 5%에 해당하는 인구비율을 가리킨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비만이 급증하는 것은 균형잡힌 식사를 챙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 방치된 아이들은 TV를 보면서 라면 등 고열량 인스턴트 식품으로 식사를 하고, 피자를 한판 시켜놓고 하루 종일 끼니를 그것으로 때우기도 한다. 오상우 이사는 “과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고, 친구들이 모두 학원을 간 사이 함께 뛰어 놀 대상도 없어 비만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학회가 수집한 사례에 따르면 저소득층 중에서도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처럼 돌봐 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이 더욱 심한 비만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린이 비만의 68%가 성인비만으로 이어지고, 비만아의 37.5%가 당뇨병ㆍ고혈압 등 성인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오상우 이사는 “비만치료는 건강보험도 되지 않기 때문에 저소득층 아이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한 부처의 힘으로는 안되며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함께 나서서 ‘비만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