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건 아닙니다."
10일 저녁 서울역에서 만난 허운호 서울역다움교회 목사는 "강제 퇴거 조치 이후 노숙인들이 간 곳"이라며 지하로 안내했다. 남대문과 연세빌딩 사이의 넓은 지하도에는 '상자집'이 몰려 있었다. 허 목사는"여기에만도 매일 밤 50~60명이 모인다. 서울역에서 목회한지가 3년째인데 노숙인 수가 줄어든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 서울역 노숙인 강제 퇴거 조치가 시행된 후 10일만에 서울시는 "노숙인 수가 112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50일이 흐른 지금 현장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노숙인 수의 직접적 지표인 무료 급식소 이용 인원이 매일 300~350명으로 이전과 변함 없다는 것이다.
서울역 노숙인의 숫자가 줄지 않는 것은 이곳의 노숙 환경이 다른 곳에 비해 양호하기 때문이다. 허 목사는 "기존 노숙인이 빠져나가는 족족 새 인원이 유입된다. 무료 급식소가 있어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행인이 많아 구걸하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역 노숙인 윤모(51)씨는 "사회복지단체 등의 노숙인 지원이 서울역 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정보만 있으면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역이 다른 곳에 비해 텃세가 심하지 않다는 것도 노숙인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쉼터 입주 추진, 임시주거비 지원 같은 서울시의 대책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노숙인 김모(45)씨는 "시가 운영하는 쉼터는 규율이 너무 심해 들어가기 꺼려진다. 시에서 4개월 동안 월세를 대주는 쪽방도 나처럼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니 이번 가을 겨울도 서울역에서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